교회

[스크랩] 신성한 소 죽이기

참빛7 2013. 10. 3. 22:01
신성한 소 죽이기

- 박지웅 목사 (서울 내수동교회) 
   

내 사무실에는 액자가 하나 걸려 있는데, 거기에는 ‘Break’라는 글자가 크게 적혀 있다. 내 방에 오는 사람마다 “저게 무슨 뜻이죠? 무언가를 돌파해 가자는 뜻인가요?”라는 물음을 던진다. 나는 대답한다. “아닙니다. 저 break라는 말은 자기파괴(self break)를 의미합니다. 자기를 깨뜨리는 것, 특히 자신의 가장 탁월하고 인정받는 부분을 과감하게 깨뜨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이건 나 자신의 일종의 좌우명이다.

가령 일평생 누구보다 ‘설교’에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 부은, 그야말로 ‘설교 권위자’라면 그가 ‘자기파괴’의 메스를 대야 할 곳이 바로 그곳이다. 고 옥한흠 목사가 목회자들에게 했던 말을 잊을 수 없다. “여러분, 설교만능주의가 되지 마세요. 저도 어디 가서 설교 못한다는 말은 별로 듣지 않았어요. 그러나 저는 설교만능주의가 되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어느 누구보다 설교에 최고의 정성과 진액을 쏟은 것으로 알려진 그였지만 그는 결코 ‘절대적 자기확신’의 그늘에 안주하지 않았다.

‘자기파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나 성장과 창조를 위해 넘어야 할 마지막 고비는 바로 이것이다. 성공의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어제의 성공’이라고 했다. 요절한 천재수필가 전혜린은 “정지한 것은 퇴폐”라고 외쳤던가? 맞다. 아무리 훌륭한 소신이라도 굳어지고 절대화되면 성장은 바로 그 지점에서 정지한다. 그리고 정지한 것은 반드시 썩는다. 결국 자신이 믿었던 그것 때문에 망하게 된다. 마치 머리채가 아름다웠던 압살롬이 결국 그 아름다운 머리채 때문에 나무에 걸려 비참한 최후를 맞았던 것과 같다.

어떤 스승과 제자가 어느 집에서 하룻밤을 묵는데, 그 집은 가난했지만 행복했다. 스승이 가만히 보니 이 집의 생계를 유지해 주는 것은 한 마리 소였다. 온 가족은 이 소를 신성시해서 소만 쳐다보고 살고 있었다. 스승은 이 집에 은혜를 갚아야겠다며 제자를 불러 조용히 소의 목을 사정없이 칼로 찔러버렸다. 제자는 놀라서 입을 벌렸다.

3년 후 스승과 제자가 다시 이 마을에 왔을 때 유독 한 집이 부잣집으로 변해 있었다. 그 집은 놀랍게도 3년 전 스승이 칼로 소를 죽인 집이었다. 집 주인이 스승을 반갑게 맞으며 말했다. “3년 전 주무시고 떠난 날 우리 집에 강도가 들어서 소가 죽었지요. 우리는 더 이상 소를 의지하며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살아갈 방도를 냉정하게 찾았어요. 모든 식구들이 나름대로 일을 찾기 시작했고 전에 생각지 못한 새로운 시도들을 자꾸 하게 되었지요. 신성한 소는 알고 보니 우리를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던 해로운 존재였어요.”

제자는 그제야 스승의 뜻을 알았다. 일명 ‘신성한 소 죽이기’다. 어제의 나, 그것도 성공의 정점에 앉은 나를 과감하게 죽여야 한다. 이것이 겸손이다. 장자는 “과거를 죽이지 않으면 새로운 현실은 없다”고 했다. ‘좋은 것’은 ‘위대한 것’의 가장 큰 적이라고 하지 않는가! 역시 인생과 신앙의 마지막 정답은 겸손이다. 


- 출처 : 국민일보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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