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스크랩] 가을 그 목마름의 계절

참빛7 2007. 9. 14. 22:33
 

가을 그 목마름의 계절


가을이라는 단어가 어느새 우리의 삶속으로 들어왔다. 저녁에 잘 때는 이불을 덮어야 하고, 한낮에는 약간의 더위를 느끼고, 아침과 저녁에는 괜히 숨을 크게 들이쉬고 싶을 정도로 싱그럽다. 담에 걸쳐있는 감나무 가지에 달린 감이 조금씩 누런빛을 띠기 시작한다. 추석이 가까워진 증거다. 벼꽃을 진즉 피우고 알알이 이삭을 맺었을 벼가 뒤 늦은 벼꽃을 얼른 피우고 결실을 맺기 시작한다. 느닷없는 가을장마에 벼들도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가을장마에 참고 있다가 잠시 태양이 떠오를 때 벼꽃을 피우고 청명한 가을날이 되니 알알이 열매를 꽉꽉 채우고 있을 가을의 선물들을 생각한다. 교도소 가는 길에 마음이 풍요롭다.


조금 일찍 집에서 출발해 안양교도소 정문 주차장에 차를 주차했다. 아내는 벌써 떡집에 들리고 시장까지 봐서 도착해 있다. 내가 교도소 교회 행사를 마치고 학교로 바로 가야하기에 각자 차를 운전하고 왔다.

운전석에 앉아 교도소를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교도소에서 어느 청년이 내려오고 있다. 손에는 쇼핑백을 들었다. 오늘 출소를 한 건가? 서서 담배 피우고 있는 두 사람에게 다가와 꾸벅 큰 인사를 한다. 90도로 허리를 숙인다. 어깨를 툭 쳐 주는 담배 피우던 사람들. 저 청년의 사연은 무엇일까?

어느 아가씨는 서류를 들고 왔다 갔다 한다. 민원창구에서 영치금 넣어주고 나오는 가 보다. 누가 들어와 있을까? 소중한 가족일까? 애인일까? 그냥 지인일까? 어째든 상대를 위해 배려하는 모습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살면서 배려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는 잘 안다. 배려는 결국 자기희생이기도 하다. 남을 위한 자기희생이 어찌 사랑 없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남을 배려하는 사람은 모두가 성자이다.

철조망 울타리 안에 가족 만남의 집이 보인다. 출소를 모범수로 수감 생활을 잘하고 있는 재소자 가족들이 면회를 왔을 때 하루정도 함께 생활하게 하는 곳으로 알고 있다. 얼마나 소중한 가족이던가. 얼마나 보고 싶었던 가족이던가. 그들을 보면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고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지 않았겠는가. 재소자 교정을 위하여 애쓴 흔적들이 교도소 여기저기에 보인다. 소리 없이 수고하는 분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번엔 네 명만 교화행사에 참석을 했다. 찬양 인도하는 백집사님, 설교하실 윤목사님, 음식 준비해 가는 아내, 인솔자인 나. 이렇게 네 명이다. 평소 함께 가던 분들이 더 바쁜 일들이 있어서 함께 하지 못했다. 또 다른 이유로는 교도소의 이미지로 인하여 참석률이 저조하다는 것이다. 허긴 어느 사람이 교도소를 선뜻 가려고 하겠는가. 아무리 재소자를 위한 봉사라고 하지만 말이다. 좋을 때 있으면 안 좋을 때도 있는 것, 그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교도관의 안내를 받으며 정신 교육장으로 들어갔다. 의자에 앉아 왁자지껄 담소를 나누고 있는 재소자들의 모습니다. 예배당에서 교화 행사를 할 때는 미리 찬송을 부르고 있었는데, 장애인 재소자들의 이동 문제로 정신 교육장에 교화 행사를 하면서부터는 찬양이 없어졌다. 처음 참석한 재소자가 많아서 혼란스럽다. 마이크를 잡고 분위기를 잡기 시작한다. 내가 장애인이 되었던 사연부터 수많은 역경들, 가정이 깨지고 지체장애 1급인 사람이 다시 재기하게 된 이야기들을 들려주니 재소자들의 분위기가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찬양이 시작되고 예배를 드린다. 예배는 정해진 순서이다.

마련해간 송편이며 과일이며 음료 등이 일회용 도시락에 담겨져 한 개씩 나눠진다. 점심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먹는 시간은 즐겁기만 한가보다. 교도소에서 먹기 힘든 음식들이라 그럴 것이다. 다과를 나누며 친교를 나누는 시간에 몇 명의 재소자들이 내 앞으로 온다. 이런 저런 사연들이 많다. 들어 보면 안타깝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정식적인 절차를 통하여 이루어져야 하는 것들인데 편법을 요구하는 것들이다. 당연히 안 된다고 할 수밖에 없다.


9월 8일 신문에 나왔던 어느 수감자의 사연을 백집사님이 들려주신다. 미리 마련해간 내용을 잘 정리하여 들려주신다. 가슴 뭉클한 사연이다. 추석을 앞두고 가족을 생각하고 편지를 보내자는 메시지도 전해진다. 내 주변에 좋은 말만 해 주는 사람만 있는가, 아니면 내 행동에 대하여 날카롭게 지적을 해 주는 가시 같은 사람도 있는가, 아니면 무관심한 사람만 있는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가시 같은 사람이 많았더라면 지금 이 자리에 푸른 죄수복을 입고 앉아 있는 사람이 많이 줄었을 거라는 내용이다. 가시를 멀리하지 말고 가시 같은 사람이 지나고 보면 나를 더 아끼는 사람이었음을 알게 된다고 했다. 모두 아는 이야기지만 살아보니 현실로 다가오는 걸 어쩌란 말인가. 할아버지 재소자의 간증도 들었다. 부활 소망을 갖고 계시는 할아버지 재소자. 가족이 없다고 했다. 40년을 감옥에서 살았다는 할아버지 이야기는 올 때마다 듣지만, 그때마다 청송으로 가는 길이라는 영화가 생각나며 안타까웠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빈 가슴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채워지지 않는 빈 가슴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던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마시고 또 마셔도 목마르는 물처럼, 그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한번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소개하는 귀한 시간들이 항상 이어지고, 그들이 생수를 마시는 좋은 일도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가을 그 목마름의 계절에 말이다. 함께 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2007. 9. 10

양미동(나눔)

출처 : 자오쉼터
글쓴이 : 나눔(양미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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