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스크랩] 분노의 결과

참빛7 2007. 8. 21. 23:17

분노의 결과

1. 내가 사람을 싫어하기 시작하는 순간, 나는 노예가 된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나의 생각을 지배하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내 일을 즐길 수 없다. 나의 분노는 몸에서 너무 많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배출시키기 때문에, 나는 몇 시간만 일하고도 곧 지쳐버린다. 전에 즐겨 일하던 것도 이제는 고역이다. 여가도 더 이상 기쁨을 주지 못한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가을의 멋진 단풍, 참나무, 자작나무가 즐비한 호숫가를 달려도, 마치 트럭을 타고 비오는 날 진흙길을 달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어디를 가든 그 사람의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 사람이 내 마음을 독재자처럼 잡고 있어서 도대체 도망칠 수 없다. 음식점에서 스테이크와 프렌치 파이, 아스파라거스, 샐러드, 딸기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먹어도 마치 굳어버린 빵과 물을 먹는 느낌이다. 음식을 씹고 삼키지만, 내가 싫어하는 사람 때문에 즐길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내 침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하지만 어떤 노예상보다도 더 잔인해서, 그를 생각만 하면 화가 치밀어 오르고 내 침대는 나를 고문하는 틀이 된다.

2. 사실, 분노는 그 자체로-"표출"과 후속 결과와는 별개로-다른 이들에게 해를 준다. 상대가 나에게 화나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나는 이미 상처를 입는다. 분노 자체만으로도 내 행동을 멈추게 하거나 방향을 바꾸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것은 또한 주변 모든 이들의 스트레스 수취를 높힌다. 그리고 내 자신에게도 분노를 유발시킬 수 있다. 대개의 경우 그렇다. 상대의 분노가 나에게 하나의 구속을 가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 의지를 방해한다. 그리하여 분노가 분노를 낳는다.

3. 내면에 품은 분노는 그 자체로 인간의 인격과 삶을 붕괴하는 힘이 있다. 반드시 구체적 "행동"으로 표출되어야만 세상의 독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분노란 그 자체가 숨길 수 없는 것이다. 존재 자체만으로 당사자의 몸과 주변 환경을 장악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모든 정신적, 정서적 자원이 분노를 키우고 어르는 데 결집되며 몸도 분노와 함께 박동한다. 모든 에너지가 분노의 힘을 유지하는 데 들어간다. 자신이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지 끝없이 되새긴다. 행동의 통제권을 분노에 내어줄 때, 말할 것도 없이 그 악은 순식간에 비참한 결과를 봇물처럼 쏟아 내며 나아가 모든 피해자의 마음과 몸에 또 다른 분노와 원한을 불러일으킨다.


VI. 어떻게 분노를 관리할 것인가?



1.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말며”(엡4:26). 성경은 분노와 화를 별개의 개념임을 강조하고 있다. 분노를 느끼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사전의 정의대로 '강한 불쾌감과 분한 마음'을 경험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다만 그 분노를 화내는 행동과 죄의 행동으로 표출하는 것이 문제다. 성질을 부리고 그릇을 날리고 주먹다짐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성경에 따르면 분노를 건설적으로 표현하는 길이 있다. 단 쉽지 않은 길이다. 잠언 16:32은 말한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자기의 마음을 다스린다'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 또 감사한 것은 이 구절을 쓴 사람이 긴장에 찬 관계와 격한 감정이 존재하는 현실 세계에서 살았던 사람이라는 점이다. 용케도 그는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때로 강력한 성을 빼앗는 것보다 더 큰 힘과 용기를 요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성을 빼앗는 무적(無敵)의 전쟁 영웅보다 낫다고 잠언은 말한다. 여기서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곧 분노를 제어한다는 뜻이다.


2. 분노를 통해 배우는 것만이 분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근본 원인에 대한 이해가 없는 한 분노는 계속 악순환을 되풀이하게 되어 있다. 분노 표현은 '나는 왜 화가 났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설 때에만 건설적인 과정이 될 수 있다.
분노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뭔가 잘못을 알리는 신호일 뿐이다. 자동차 본네트 안쪽에 손볼 것이 있음을 일러 주는 계기판의 경고등 같다고 할까? 경고등을 보고 지침서를 꺼내 보거나 본네트를 열어 잘못된 곳을 찾아본다면 그 조그만 빨간 색 불빛은 큰 도움이 되는 셈이다. 분노도 똑같다. 분노를 계기로 마음의 이면으로 들어가 그토록 화가 난 이유를 정확히 찾아낸다면 분노가 큰 도움이 된다.
감정의 정체가 분노라는 것을 빨리 인식할수록 분노를 통한 배움도 그만큼 빨라질 수 있다. 일단 분노를 인식했으면 다음 단계로 분노에 대한 반응이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분노란 반드시 부정할 필요도 없고 억누를 필요도 없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마구 내뱉을 필요도 없다.
분노관리에서 다음 단계로 배울 것은 이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나는 왜 화가 났는가? 이 분노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우리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부분은 특정관계나 사건이나 상황이 왜 내 안에 분노를 일으키는가 하는 점이다.

분노를 유발하는 것은 외적인 사건일 수 있지만 정작 우리를 분노에 휩싸이게 하는 것은 내적인 요인이다. 특정 가치관, 신념, 가정 등에서 비롯된 내면의 태도가 외적인 사건에 의해 침해당할 때 분노를 느끼는 것이다. 분노를 통해 배우려면 그 내면의 태도를 밝혀 내야 한다. 그래야 처리 과정에서 의식적이고 근거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그 선택은 특정 상황을 바꾸려는 노력, 대의를 위한 투쟁, 불의의 타도 등이 될 수 있다. 다투던 사람과 화해하는 것, 실망스런 상황을 수용하는 것, 자기 내면의 태도를 고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분노를 다스리는 일의 진보는 바로 그러한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종류 여하를 막론하고 분노를 느낄 때마다 우리는 내면의 태도를 깊이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자기 이익만 따지고 자기 자격만 내세우는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상황적 분노의 경우 자신의 태도를 신중하게 검토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3. 분노를 다스리는 8가지 무기
당신의 분노는 너무 오랫동안 당신의 주인이 되어왔다. 이제는 당신이 그 분노심을 다스릴 차례다.

1) 귀를 크게 하라.

큰 귀는 당신의 참지 못하는 성질에 제동을 걸어주는 역할을 한다.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상대방의 말을 듣겠다는 확고한 다짐이 필요하다. 화가 끓어오를 때까지 상황을 몰고 가지 말고, 먼저 인내하며 들으라. 대개의 경우, 대화의 두 당사자는 서로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두 개의 활화산처럼 서로에게 분노의 용암을 쏟아 붓게 된다. 만약 당신이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기분이 어떤지를 이해하고 있다면, 그런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게 될 것이다. 처음 몇 마디 말을 듣고서는 누구라도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기 힘들다. 그의 말이 다 끝날 때까지 조용히 듣고 있다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물으라. 그리고 나서 모든 것이 명백해졌을 때 비로소 당신의 견해를 피력하라.

2) 화를 식히기 위해 일보 후퇴하라.

당신 안에 있는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고 있다면, 당신은 먼저 그 불길이 잦아들 수 있도록 얼마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 불길이 당신 주위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고 당신으로부터 달아나게 만들었는지 생각해 보라. 그러므로 즉각 당신의 화를 터뜨릴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일단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 사실을 명심하고, 이제 새로운 훈련에 착수하라. 그것은 화를 식힐 만한 충분한 시간 여유를 갖지 않고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 훈련이다. 불길이 잡힐 때까지 뒤로 물러서서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라. 다른 어떤 사람에게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고하라. 그렇게 해서 뜨거운 기운이 사라지고 나면 비로소 입을 열라.

3) '하루'라는 한정된 시간을 정하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엡4:26).
아직은 작은 문제일 때 해결해 버리라. 뒤로 미룬다 해도 상황은 지금보다 복잡해질지언정 쉬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화를 품은 채 하루를 마감하게 된다면, 그 감정은 곧 더 큰 분노로 변할 것이다. 마치 접시 위의 음식물 찌꺼기를 바로 씻어내지 않으면 딱딱하게 달라붙어 씻어내기 힘들어지듯이, 바로 털어내지 못한 화는 완고함과 괴팍함으로 굳어져 당신이 그렇게도 통제하고 싶었던 마음속 불길을 부추기는 연료 역할을 할 것이다. 그리고 분노의 감정이 막 생기려 할 때 재빨리 손쓰지 않는다면, 당신의 반대편에 서 있는 누군가가 역이용할지도 모른다.
"마귀로 틈타지 못하게 하라"(엡4:27). 이 경고는 해가 지기 전에 분한 마음을 버리라는 말씀 바로 뒤에 나온다. 이것으로 미루어 하나님은 당신이 어떤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분한 마음을 품고 있으면 바로 그 마음이 사탄의 활동 본거지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하시고자 한 것 같다.



4) 어두운 기억을 청산하라.


화를 폭발시키는 원인이 종종 어디에서 비롯되는가를 알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아주 간단한 실험을 해볼 수 있다. 우선 유리잔에다 물을 반만큼만 부으라. 그리고는 물이 가득찰 때까지 조금씩 조금씩 물을 떨어뜨려 보라. 물이 반만 들어 있는 잔에는 한참 동안 물을 떨어뜨릴 수 있을 것이다. 자, 이제는 물이 한 잔 가득 차 있다. 거기에 몇 방울의 물을 떨어뜨려보라.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곧바로 흘러 넘칠 것이다. 요점은 간단하다. 잔이 가득찬 상태에서는 물 몇 방울로도 흘러 넘치게 만들 수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와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어떤 사람이 습관적으로 자신의 격상된 감정을 밖으로 표출한다면, 그것은 그때 당시의 어떤 한 사건이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게 마음속 분노를 쉽게 드러내는 이유는 바로 그들의 잔이 이미 고통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위로받지 못한 고통이 마침내 분노로 돌변한 것이다.

안에서 사납게 소용돌이치는 감정들은 그동안 당신의 잔을 채워왔던 고통스러운 경험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수많은 가슴 아픈 기억들이 당신의 감정이라는 유리잔을 조금씩 채워왔다. 그리고 이제는 아주 작은 갈등도 수용하지 못할 정도로 잔이 가득차버렸다. 그래서 누가 조금만 시비를 걸어도 당신은 주위 사람들에게 분노의 잔을 흘러넘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온갖 어두운 감정들로 가득 찬 그 잔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밖으로 드러난 분노의 증상은 마음속 질병이 먼저 치유되지 않고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기억의 치유자, 화를 부추기는 오랜 상처들을 어루만져주신 유일하신 분, 곧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분은 기꺼이 당신과 함께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을 더듬어가실 것이다. 그리고 하나하나의 상처들을 어루만지시고 그 고통의 짐들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도우실 것이다.



5) 희생자를 방문하라.


당신의 못된 성질을 바로잡고자 마음먹었다면, 다음과 같은 '닦아내는' 과정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곧 당신이 무분별하게 성냄으로써 애꿎게 상처를 입었을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사과하고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주어야 한다. 그 상대가 누구이건 당신의 생각없는 말 한 마디로 깊은 상처를 지니고 살았을 그 사람을 찾아가 용서를 빌라. 이러한 '교정'의 단계는 당신과 상대편 모두에게 이로운 결과를 준다. 당신이 고통을 주었던 그 사람에게는 기꺼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로 하여금 마음속에 각인된 추악한 기억들을 제거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리고 당신 자신에게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깨끗한 출발점을 만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그러한 노력은 한때의 분별없는 행동이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초래하는가를 깨닫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동기가 되어줄 것이다.



6) 적을 변화시키라.


우리는 마음의 적들을 제거하는 데 예수님의 방법을 따라야 한다. 곧 그 적들을 더 이상 '적'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이다. 이 과정은 당신을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그분의 계명에 순종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보기만 해도 역겨운, 보기만 해도 화가 나는 사람들을 위해 매일 기도를 시작한다면 무언가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첫번째로, 그들에게 축복을 내려달라는 당신의 기도에 힘입어 그들의 인격이 근본적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설령 그들이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당신 자신이 변화될 것이다. 어떤 사람을 위해 꾸준히 기도하면서도 여전히 그를 향해 분노를 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7) 적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라.


누군가를 벌하는 일은 당신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다. 우리가 스스로 '악을 악으로' 갚고자 한다면, 그것은 심판자 하나님의 권한을 침범하는 일이다.(롬12:17-19).
하나님께서 직접 마땅한 심판을 내리시도록 맡긴다면, 마음속의 분노는 연료가 끊겨 더 이상 타오르지 못하게 될 것이다.



8) 예수를 통해 세상을 보라.


예수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면, 이전에는 생각지 못했을 방식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특히 당신에게 고통을 주었던 당사자들에 대해 놀라울 만큼 너그러워질 것이다. 예수님은 그의 악한 행동 이면에 감추어진 내적인 고통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심으로써, 당신이 분노의 감정으로부터 놓여나게 해주실 것이다. ...당신이 그들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상처를 주는 사람 이전에 더 큰 상처와 고통의 기억을 지닌 사람으로, 당신 자신보다 더 위로가 필요한 사람으로 인식한다면, 그들을 대하는 당신의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의사이신 예수님은 당신으로 하여금 그분이 세상을 보시는 것과 똑같은 눈으로 사람들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특별한 '안과 의사'라고 할 수 있다.

 

- 옮겨온 글 -

    천상의비밀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카타리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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