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할 곳이 있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현장취재 ‘노숙인 일자리
갖기’
![]() 노숙인의 사회복귀를 돕기 위한 ‘노숙인 일자리 갖기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어느덧 보름이 지났다. 4일간의 사전교육을 마치고 현장에 배치된 노숙인은 총 600명, 이들은 시내 149개 건설 현장에 배치돼 자활의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느슨했던 생활에서 벗어나 점차 짜여인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노숙인들의 건설 현장 생활도 조금씩 이력이 붙어가고 있었고 그만큼 그들의 표정은 더없이 밝아 보였다.
“이번이 정말 자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 지난 20일, 한강대교 남단 ‘지하철 9호선 911공구’ 건설 현장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공사장 주변 청소가 한창이었다. 이곳에 배치된 6명의 노숙인은 빗자루와 물걸레를 들고 전날 공사로 어지러워진 주변을 말끔히 치우는 것으로 하루 업무를 시작했다. 한결 포근해진 날씨 탓인지 어느새 작업복이 땀으로 젖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더 잃을게 없는 사람들 아닙니까. 바닥까지 갔던 사람들인데..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에요. 모든 게 새롭고 재밌어요.” 이곳에 배치된 노숙인들의 조장 역할을 맡은 김OO씨(60세)의 말이다. 곧 잠깐의 휴식시간이 주어졌지만 손에 쥔 빗자루와 청소도구를 내려놓지 못할 만큼 이들이 일을 하겠다는 의욕은 강했다. 노숙인 쉼터를 통해 ‘일자리 찾기 프로젝트’에 지원했다는 남OO씨(53세)는 “생각하는 게 많이 변했죠.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고. 이번 기회가 정말 자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어요.”고 말했다. 같은 ‘지하철 9호선 911공구’지만 근처 흑석동 현장에서 근무중인 김OO씨(48세)도 지난 6일 이들과 함께 배치됐다. 그동안 공공근로도 나가보고 자활 프로그램에도 나가봤다는 김씨는 이제야 비로소 일을 갖게 됐다는 기쁨이 크다고 말한다. “공공근로 같은 것은 사실 일을 하긴 하지만 도움을 받는다는 기분이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여기에서는 정말 제가
일을 하고 그 대가를 받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매일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게 제일 좋고요.” 김씨와 함께 911공구 흑석동 현장에 배치된 노숙인은 6명, 한강대교 남단에서 일하고 있는 6명의 동료와 함께 성동구에 있는 노숙인 쉼터 게스트하우스에서 출근하고 있다. 아침 5시 반에 일어나 6시 반에 쉼터를 나서 출근시간 20분 전인 7시 40분까지 현장에 도착한다. 점심시간을 빼고 이들의 하루 근무는 총 8시간, 5시에 일과를 마치고 나면 쉼터로 돌아가 저녁을 챙겨야 한다. 이동 거리가 멀어 불편하지 않으냐는 물음에 김씨는 “편한 것만 찾으면 일을 하지 말아야죠. 이런 기회가 주어진 게 어딘데, 불편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라며 미소 지었다. 건설현장 관리자들도 ‘노숙인 일자리 갖기 사업’ 호평 다시 일어서겠다는 이들의 의욕에 건설업체 관계자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911공구 현장 민금식 관리팀장은 “전쟁터 같은 지하철 공사현장에 노숙인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나 싶어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민팀장은 그러나 “처음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모두 성실하고 일도 잘해 이제는 외려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무엇보다 다들 다시 서겠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전했다. 현장을 감독하고 있는 맹찬선 주임은 “이분들 일하시는 모습 보면서 노숙인이라는 편견이 사라졌어요. 자재정리를 맡겨도 곧잘 하시고요. 앞으로 시간이 지나고 일이 더 익숙해지면 좀 더 어려운 일을 맡겨도 되겠어요.”라고 말했다. 노숙인들도 이제는 현장 관리자들과도 친해져 스스럼없는 사이가 됐다. 노숙인 쉼터에서 생활하는 동안 줄곧 새벽 인력시장에 나갔다는 강OO씨(43세)는 10번 나가면 10번 모두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낙심하고 돌아서던 때를 떠올렸다. 혹여 일자리를 구했더라도 적은 임금은 고사하고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던 일을 털어놓은 강씨는 “무엇보다 이곳에 계신
관리자분들이 인간적으로 대해줘서 너무 고맙죠.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을 겪은 사람들이라 눈치주거나 홀대하면 맘이 상해서 일할 의욕이 생기지
않거든요.”라며 “마음만은 정말 편하다”고 덧붙였다. 이곳 현장에선 노숙인을 ‘쉼터 근로자’라고 부르고 있다. 민금식 팀장은 “자활이나 재활, 노숙인 근로자보다는 쉼터 근로자라고 불러야 해요. 호칭에도 상처를 받을 수가 있거든요. 이분들도 노숙인 근로자라는 호칭보다는 쉼터 근로자라고 부르면 훨씬 자긍심을 가지시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현장에 배치된 노숙인들이 받는 일당은 통상적인 건설 일용인부 임금 기준 최저 수준인 5만원, 이 중 절반을 서울시가 부담하고 나머지 절반은 건설업체가 부담하고 있다. 이렇게 한 달(20일 근무)을 일해 받는 금액은 100만원, 4대 보험료를 제하면 93만원 가량을 손에 쥐게 된다. 원래는 월급으로 지급될 예정이었지만 교통비 등 당장 들어갈 곳이 있어 이번 달까지만 주급으로 지급되고 있다. 이제는 일당 5만원이 꼬박꼬박 쌓이고 있다는 기쁨에 돈 모으는 재미도 슬슬 붙어가고 있다. 그간 정기적인 일을 하지 않아 월요일 출근이 귀찮을 법도 한데 외려 일주일치 주급을 받는 월요일엔 출근하는 발길이 가볍단다. “이제 2주치 주급을 받았거든요. 다음달부터 월급으로 받게 되고, 2~3달 지나면 돈이 좀 모이겠죠.” 조장 김씨의 희망이다. “이곳에서 열심히 일해 임대 아파트라도 마련하는 게 희망” 건설 현장에 나와 있는 노숙인들은 이 프로젝트가 반짝하고 마는 게 아니라 꾸준히 계속됐으면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며칠 전에 고용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이제 뭔가 신분이 안정된 느낌이 든다”고 기뻐하는 강씨는 “노숙인 일자리 갖기 사업이 1년이건 2년이건 계속돼 이곳에서 일하며 돈이 좀 모이면 나중에 11평짜리 임대아파트라도 마련해 자립하는 게 희망이에요”라고 말했다. 강씨가 말하는 동안 옆에서 조용히 침묵을 지키던 이OO씨(53세)도 “더 열심히 하겠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어요. 자리가 허락하면 계속 일하고 싶어요.”라고 눈빛을 반짝였다. 노숙인 일자리 갖기 프로젝트는 1단계로 2월 6일부터 4월 30일까지 진행된다. 현재 뉴타운사업 현장에 120명, 건설안전본부 공사 현장에 200명, 지하철 건설 공사 현장에 200명, 상수도사업본부 공사 현장에 80명 등 총 600명이 배치돼 있다. “기업에서 말하는 나눔 경영이 따로 있겠어요. 노숙자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다시 설 수 있게 하는 게 나눔 경영이죠. 정부에서 말하는 일자리 창출도 그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난 2주간 노숙인들과 함께 땀을 흘려온 ‘지하철 911공구’ 토목사업본부 김요석 차장의 말이다. 서울시는 얼마 전 이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기존의 노숙인지원팀을 노숙인대책반으로 승격했다. 앞으로 서울시는 노숙인 일자리 갖기 1단계 사업의 성과를 분석한 후 확대해 나갈 계획인데 2단계부터는 하수도 준설 사업 등 소규모 사업장에도 집중 투입할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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