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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선택받은 백성 천손민족의 계보③

참빛7 2014. 8. 22. 23:11

선택받은 백성 천손민족의 계보[3]

 

 

   

   장자권을 얻은 작은 아들 셈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셈을 노아의 장자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성경 독자들이 그렇게 오해하고 있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노아의 세 아들이 셈, 함, 야벳의 순으로 일컬어지기 때문이다(창 5:32, 6:10, 7:13, 9:18, 10:1 ; 대상 1:4). 이러한 배열로 인해 그들의 나이 역시 같은 순서라고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노아에게 셈, 함, 야벳의 순서로 아들들이 태어났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노아의 아들들은 야벳, 함, 셈의 순서로 출생했다.


  창세기 5:32을 보면 “노아가 오백세가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 ‘된 후에’는 한글개역성경에 작은 글자로 인쇄되어 있는데, 원문에는 없는 말을 문맥을 고려하여 번역문에 삽입한 것이다.


  창세기 5:32의 히브리어 원문을 직역하면, “노아가 500세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이다. 이 구절이 의도하는 바는 노아가 500세 되던 해에 첫 아들이 태어나고, 그 다음에 차례대로 다른 두 아들이 태어났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 ‘셈과 함과 야벳’ 이라는 순서가 꼭 나이에 따른 순서여야 할 이유나 증거는 없다.

 

  셈이 야벳보다 더 어리다는 사실은 창세기 11:10을 통하여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셈은 일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라는 기록에 의하면, 셈이 100세가 된 것은 홍수 후 이년이 지나서의 일이었다. 노아가 600세 되던 해 2월 10일에 노아와 그의 가족은 방주로 들어갔고, 그로부터 이레 후 곧 2월 17일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여 40일을 내렸으며(창 7:9~12), 그들이 방주 밖으로 나온 것은 노아가 601세 되던 해 2월 27일이었으니(창 8:14~19), 노아 홍수는 햇수로 볼 때 2년이나 지속된 장기간의 대사건이었다.

 


  사람들에게 노아 나이 600세와 601세의 두 해는 홍수 해로 기억되었을 것이고, 그 후 두 해(노아 나이 602세와 603세)가 지나, 노아의 나이가 대략 604세가 되던 해에 셈은 나이 100세가 되어 아르박삿을 낳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셈은 노아가 504세가 되던 해에 태어난 셈이 된다. 이상 고찰한 바를 창세기 5:32에 기록된 “노아가 오백 세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 는 말씀과 묶어서 볼 때, 셈은 결코 노아의 맏아들이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노아는 첫 아들을 500세에 낳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증거로서 창세기 9:24을 제시할 수 있다. 그 곳에 기록되기를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라고 하였다. 한글개역성경에는 ‘작은’을 위하여 ‘둘째’ 라는 각주를 덧붙임으로서, 이 아들이 다름 아닌 ‘함’ 임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본문에 의하면 직접 저주를 받은 사람은 함이 아니요 그의 아들 가나안이었다. 즉 함에 대한 명시적인 저주가 없음을 고려할 때, 여기서 말하는 그 ‘작은 아들’은 함이 아니라 오히려 셈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이렇게 볼 경우, 이 작은 아들이 ‘행한 일’은 무슨 저주받을(25, 27하반절) 악한 행실이 아니요, 궁극적으로 복을 받아 마땅한(26, 27상반절) 아름다운 행실을 가리키게 된다.


  뿐만 아니라 창세기 9:24의 ‘작다’(하카탄)라는 형용사가 반드시 최상급으로서 ‘막내’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지만, 히브리어의 일반적인 어법상 최상급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가장 작은(어린)’ 이란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막내’는 셈이 된다.


  끝으로 고찰해야 할 구절은 창세기 10:21이다. 우선 우리 말 성경부터 살펴보자.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라고 번역하였다. 바로 이것이 셈이 작은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맏아들로 오인케 하는 가장 큰 문제의 구절이다. 이 구절에 대한 히브리어 본문은 ‘아히 예페트 하가돌’이다. 이 히브리어 구절은 두 가지의 직역이 가능하다: ① 야벳의 큰 형제(brother), ② 큰(자) 야벳의 형제. 다시 말해서 ‘크다’(하가돌)라고 하는 형용사가 ‘야벳’과 ‘형제’ 중 어느 것을 수식하느냐에 따라 이 문구의 해석이 달라진다. ‘야벳’을 수식할 경우 야벳이 형이 되고, ‘형제’를 수식하면 셈이 형이 된다.


 [맛소라 사본에는 셈이 “큰 자 야벳의 형제”, 즉 “맏형 야벳의 형제”(΄achi yepet haggadol)로 나타나 있다. 맛소라 학자들이 고안해 낸 액센트 부호의 기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구두점 역할인데, 맛소라 성경의 액센트는 여기서 ‘크다’(΄achi)가 ‘야벳’(yepet)을 수식하고 있음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맛소라 학자들은 야벳을 셈의 형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70인 역(LXX) 역시 맛소라 학자들의 견해들을 지지해 준다. 이 구절에 대한 70인 역의 번역문(αδελΦω ΙαΦεθ Του μεζονο)에 있어서 명사 ‘야벳’과 형용사 ‘크다’는 동일한 2격(소유격)을 취하고, ‘형제’는 3격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큰 자’는 셈이 아니라 야벳이다.]


  그런데 앞에서 상세히 검토했듯이 셈이 ‘가장 작은 아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크다’는 야벳을 수식해야 한다. 따라서 야벳을 셈의 형으로 해석하여 창세기 10:21은 다음과 같이 번역하여야 한다: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형 야벳의 동생이라….”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글개역성경을 비롯하여 거의 대부분의 현대 역본들이 셈을 야벳의 형으로 이해하고 또 그렇게 번역하였다. 이 그릇된 번역이 작은 아들인 셈을 노아의 큰 아들로 오해하도록 막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다. 다만 영어 성경 가운데  NIV, KJV, AB가 야벳을 셈의 “형”으로 올바르게 번역하였다.


  * King James Version

 “Unto shem also, the father of all the children of Eber, the brother of Japheth the elder, even to him were children born.”


  * New International Version

 “Sons were also born to shem, whose older brother was Japheth; shem was the ancestor of all the sons of Eber.”


  * Amplified Bible

  “To Shem also, the younger brother of Japheth and the ancestor of all the children of Eber, children were born.


  이상의 모든 고찰을 근거로 가장 안전하게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야벳은 노아 500세 되던 해에, 함은 노아 502세 되던 해에, 그리고 셈은 노아 504세 되던 해에 태어났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노아의 세 아들은 야벳, 함, 셈의 차례로 태어났던 것이다. 따라서 성경이 셈, 함, 야벳의 순서로 기록한 것을 나이 순서로 배열했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셈은 그의 나이에 관계없이 먼저 언급해야 되는데 그것은 그가 택함을 받은 씨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아비 데라도 아들이 셋이 있었다. 창세기 11장 27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데라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여기에 아브라함이 맨 앞에 나오지만 그는 데라의 작은 아들이었다. 나홀이 제일 위이고 하란이 둘째, 아브람이 막내였다. 그런데도 아브람을 맨 앞에 쓴 것은 아브라함이 데라의 계승자이기 때문이다. 아브람은 언약의 계승자로 선택받았다. 그래서 선택된 계승자로서 맨 앞에 위치한 것이다.


  셈도 노아의 작은 아들이었지만 형제들 가운데서 하느님의 직계 종주손으로 선택받은 자였기 때문에 맨 앞에 기록된 것이다. 셈은 가장 작은 자였다. 그러나 그는 가장 큰 자가 되었다. “셈의 하느님을 예배하라!” “하느님은 셈의 장막에 거하소서!”


  셈은 작은 아들이었지만 하느님이 ‘셈의 하느님’이 되시고 또한 셈의 장막이 ‘하느님의 거처’가 됨으로서 그는 노아 가문의 진정한 장자가 된 것이다. 이처럼 원래는 장자가 아니었지만 장자권을 획득한 사례는 성경에 많이 나온다.


  이삭의 아들 에서가 장자였지만 동생 야곱이 장자권을 얻었고(히 12:16), 야곱의 장자는 르우벤이었지만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에게 장자의 명분이 돌아갔고(대상 5:1), 요셉의 장자는 므낫세였지만 작은 아들 에브라임에게 장자권이 전수되었던 것이다(창 48:13~20). 왜 하느님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일하실까? 이 모든 것들은 약한 자를 택하사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느님의 자비하신 성품을 계시하려는 것이다(고전 1:27~28).


  하느님은 ‘셈의 장막’에 거하시는 ‘셈의 하느님’이시다! 이렇게 셈에게는 ‘셈의 하느님’이라고 했으니 셈은 형제들 가운데서 하느님의 직계손으로 선택을 받았다. 그리하여 거룩한 선민의 가계는 대홍수 후 노아의 작은 아들 셈으로부터 그의 후손에게로 내려오게 되었다. 야벳과 함의 후손은 탈락되었다. 여호와 하느님은 선조 시대부터 셈족과 긴밀한 관계 아래 계시는 것이다. 

 

-계  속   

     

   

   알이랑민족회복운동

         유석근 목사

출처 : 알이랑 코리아 선교회 - 알이랑민족회복운동
글쓴이 : 셈의장막재건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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