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십자가 신학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신학적 사상의 핵심은 한마디로 십자가이다. 그는 예수의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우뚝 서있다고 믿는다.1) 루터가 표현하였듯이 “참된 신학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안에 있다”2) 그는 십자가신학의 개혁주의적 뿌리를 마틴 루터에게서 찾는다. 그의 첫 저작은 “루터의 십자가신학”이다. 루터의 십자가신학(Luther's theology of the cross) - 이 책의 요지는 루터의 십자가신학은 바로 하나님의 의 연구와 직결되어있다는 점이다.3) 루터의 십자가신학의 루터의 하나님의 의에 대한 연구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루터의 표현에 따르면 오직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며 십자가가 모든 것을 시험하는 것이다. 루터는 궁극적으로 교회와 신학의 진정한 중심을 다시금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세우고 있으며 십자가 신학의 의미를 되새겨주고 있다.4) 이 연구는 1509-19년에 걸쳐 형성된 루터의 십자가 신학(theologia crucis)의 발전의 복잡성을 파헤치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칭의라고 하는 루터의 발전적인 통찰이 ‘십자가 신학’의 개념들에 담겨졌던 방식들을 말하고자하는 것이다. 이 발전단계는 이러한 통찰들이 발생했던 중세 후기 신학적 상황의 견지에서 고려되어야 한다.5) 중세후기루터(1509-14) - 중세 후기의 교회 내에는 칭의 교리에 관하여 상당한 혼란이 있었다. 이러한 혼란은 종교개혁에 이르는 길을 예비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수행했다.6) 어떻게 죄인이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시작할수 있을까요? 어떻게 고뇌에 찬 양심이 은혜로운 하나님을 발견함으로써 평화를 찾을수 있을까? 이질문은 루터만의 고민이 아니었다.7) 1517년 4월 26일, 루터가 자신의 놀제들을 게시하기 약 6개월 전에, 당시 비텐베르크의 신학과 학장이었던 안드레아스 보덴스타인 폰 칼슈타드(Andreas Bondenstein von Karlstadt)는 151개조의 반박문을 게시하였다. 그 해가 되기 전에 어거스틴의 참된 신학에 대한 칼슈타트 자신의 발견을 반영하고 있는 이 조문들은 논쟁의 소지가 다분한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주로 칭의 교리에 관련된 것이었다.8) 루터는 로마교황의 권위나 연옥의 존재를 문제삼은 적이 없으며, 실제로 그는 사도적 은사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확신하였다. 후일 루터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칭의 문제에 비한다면 면죄부에 관한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는 신학적 관점에서 볼때 면죄부에 관한 논제들의 게시가 종교개혁의 시작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9) 루터에게 있어서 도덕적 개혁과 영성의 회복은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지만, 기독교 교리의 개혁과 관련해서는 부차적인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10) 루터에게 있어서 복음은 칭의에 관한 기독교의 신조 속에 곧 지금 죄인이고 또 그의 전 생애를 통하여 죄인으로 남게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과의 은혜의 관계를 시작할수 있다는 확신으로 요약되어있었다.11) 1537년의 슈말칼트 신조(Smalkald Articles)는 교황권과 세상과 마귀에 대항하는 복음적 투쟁에 있어서 모든 것은 기독교의 칭의 조항에 달려있다고 주장한다.12) 기독교 교리의 개혁을 위한 투쟁에서 복음주의의 주장은 이 하나에 전적으로 달려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므로 십자가신학이라는 표현속에서 절정에 달했던, 1509년에서 1519년에 이르는 중요한 기간 동안 이루어진, 루터의 칭의 교리의 발전에 관한 연구는 역사가와 신학자에게 한결같이 대단한 관심거리가 된다는 사실이다.13) 만약 루터가 중세 후기에 왜곡되어 있던 칭의에 관한 진정한 가톨릭의 이해를 복원했다거나 회복시켰다는 사실이 증명될 수 만 있다면, 루터가 칭의에 대한 이같은 이해를 기초로하여 시작했고 견지했던 교리의 개혁은 매우 진지하게 다루어져야 한다.14) 맥그래스가 발견한 증거는 루터의 신학적 통찰이 인문주의와 새길의 유명론, 그리고 그 자신이 몸담고 있었던 어거스틴 수도회의 신학, 이 세가지의 주요한 사상적 흐름의 영향아래, 비텐베르크에서 체류하던 오랜 기간에 걸쳐 생겨난 것임을 말해준다.15) 비텐베르크 종교개혁의 원류: 인문학(Studia Humanitatis), 새길(Via Moderna), 신 어거스틴 학파(Schola Augustiniana Moderna) 인문학 - 1519년의 라이프찌히 논쟁까지 루터와 인문주의자 운동 사이에는 상당한 정도의 밀접한 관계가 명백하게 존재했었다.16) 인문주의 운동이 넓게는 종교개혁의 신학적 발전에, 좁게는 특히 청년루터의 신학적 발전에 영향을 끼쳤다.17) 더욱이 종교개혁교회들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신학에 끼친 인문주의의 영향력도 주목할 만한 것으로 생각된다. 멜랑히톤과 같은 다른 개혁자들은 인문주의 운동과 성의있는 관계를 유지했던 반면, 루터는 인문주의 운동과 거리를 유지했고, 마침내 1525년에 출판된 “노예의지에 관하여”(deservo arbitrio)라는 논문을 통해 에라스무스를 공식적으로 비난함으로써 그 때까지 인문주의 운동과 유지해왔던 관계를 깨뜨렸다. 1517-19년 동안 참된 신학은 인문주의에 거의 빚지지 않은 것으로 볼수있다.18) 인문주의 운동은 종교개혁의 원인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종교개혁의 본질적인 촉매제(essential catalyst)라고 볼수 있다. 인문주의는 종교개혁의 아버지가 아니라, 출생에 있어서의 산파역할을 했다.19) 새 길(Via Moderna)20)- 윌리엄 옥캄과 관련된 학파 (새길=그레고리의 길)그레고리의 신학은 특별히 칭의에 관한 그의 교리에 있어서 그가 옥캄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다 할지라도 그의 논리학과 형이상학이 철저히 옥캄적이라는 사실은 강조되어야 한다.21) 맥그래스가 밝혀낸 것은 이 새길(Via Moderna)이 펠라기우스적이 아니라는 점이다.22) 새길 신학자들은 여전히 인간의 행위가 인간의 칭의를 가져온다고 생각한 반면에,(그 행위의 본래적인 가치는 하찮다고 주장함으로써) 인간의 행위를 펠라기우스적으로 만드는 것을 피할수 있었다. 새 길의 신학의 많은 측면들이 하나님의 두 가지 능력에 관한 변증법을 확실히 제외한다면, 칭의에 관한 청년 루터의 신학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수 있다.23) 신 어거스틴 학파(Schola Augustiniana Moderna) - 칭의에 관한 ‘중세의 어거스틴적 전통’이 루터가 접하여 결국 칭의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신학을 만들게 되었던 ‘신 어거스틴학파’의 형태로 존재했었다는 사실이다. 슈타우피츠가 칭의에 있어서 창조되지 않은 은총의 역할을 특별히 강조한점은 중세 후기 어거스틴 수도회 내에 있었던 신학적 전통을 반영하는 것이다. 24) 루터시대까지 칭의교리는 진정한 성 어거스틴 신학을 결합함과 동시에 새길과 연관된 하나님의 두가지 능력 사이의 변증법과 같은 논리 비평적인 방법을 적용하면서 단지 혼합된 종류들로 생각될수 있는 어거스틴파 교단의 분파들 내부에서 발전되어왔다. 새길과 연관된 칭의 교리의 특징적 측면들은 새길과 구별되는 칭의에 관한 다른 가르침들과도 연관된다.25) 루터와 신어거스틴 학파와의 관계는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26) 중세 후기 신학자 루터 - 루터의 초기 신학적 발전을 연구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료는 시편에 관한 그의 첫 번째 강의인 Dictata super Psalterium이다.27) 이 책에 나타난 칭의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을 나열해 본다. (1) 심판은 때때로 하나님 자신의 심판을 언급하는데 사용된다. (2) 심판은 보통 인간 자신이 참으로 형벌과 죽음을 받을 만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3) 루터는 종종 겸손이 은총을 받기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말한다. (4) 루터는 인간이 율법의 행위를 통해 의롭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인간은 그의 외적인 도덕성에도 불구하고 죄와 공허함을 깨닫게 된다. 인간은 구원을 간구하는 일외에 어떠한 일도 시도할수 없다. 만일 이사실을 깨닫게 되면 그는 신의 계약에 의해 은총을 받는데 필요한 조건을 이행한 것이 되고 당연히 은총의 선물이 뒤따라온다. 이것이 중세후기의 루터의 이해다.28) 1514년 루터는 잘 정립된 중세 신학의 전통속에 확고히 세워졌던 칭의 교리를 견지했다. 인간에게 요구되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의 선물을 받기 위해 하나님앞에서 겸손해지는 것이다. 루터의 “하나님의 의” 발견 - 하나님의 의 또는 이와 유사한 개념들에 대한 루터의 이해는 본질적으로 새 길에 대한 이해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루터는 이러한 틀로부터 벗어나 결국 1518년 십자가신학이라는 그 자신만의 위치를 형성했다. 십자가 신학의 형성은 수년간에 걸쳐 일어났고 ‘하나님의 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의 문제와 관련하여 초기에 루터가 겪은 낙제들에 의해 촉진되었다. 이 질문에 루터가 새로운 대답을 하였고, 이로 인해 그의 신학의 전체적 내용이 개정되어야만 했다. 루터가 하나님의 의를 발견한 것은 십자가 신학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겨우 첫 걸음에 불과한 것이다. 루터는 하나님의 의의 개념이 확립됨으로써 그의 신학적 틀을 재고해야만 했다.29) 중세후기 신학적 상황에서 루터가 겪은 난제들은 하나님의 의 자체 의미에 대한 문제이다.30) 어거스틴의 칭의 교리에 있어서 좀더 주목할 만한 것들 중의 하나는 당시히브리 용어 sbqh를 키케로식 의미31)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논리적이라기보다는 직관적으로 이 용어의 근보적인 의미를 인색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키케로식 이해는 유아사망자들의 운명등을 포함해서 여러문제를 남긴다. 반면 새길의 구원론은 계약적 인과관계의 개념과 복잡하게 연관되어있다. 새길의 구원론의 근본적인 전제는 ‘하나님은 스스로 부과한 제약 속에서 그의 행위를 시작 한다’는 원리를 가지고 있다.32) 비엘(계약론자)은 하나님의 의를 하나님이 계약의 조건에 충실하고 공정하다는 일반적 원리, 즉 누구든지 주어진 조건들을 이행한 사람들에게는 은총의 선물을 주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벌한다는 원리로서 여겼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의에 대한 두가지 측면이 구별될수 있을 것이다. 1)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으로 그의 약속에 충실함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 2)각자에게 자신의 것을 주는 하나님의 의 새길의 신학자들은 예수를 구원자라기 보다는 율법학자로 여겼다. 초기에 루터는 예수를 하나님의 구현이라고 여겼다.33) 새길의 신학자들이 생각한대로 예수를 그들의 구원체계와 일치시키지 못했다는 것은 확실하다.34) 의를 각자에게 잔신의 것을 주는 것으로 보는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키케로의 법률적, 정치적 저술들, 그리고 교회법의 본문에서도 볼수있다.35) 하지만 루터는 이러한 키케로식 해것과 자신이 발견한 성경해석과 대조를 시킨다. 시편 22(23).3-그는 나를 의의 길로 인도한다-에 관해 주석하면서 루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에서나 혹은 법률가들이 사용하는 것과는 같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롭게 하시는 믿음, 혹은 은혜를 말한다. 실제로 1515-17년에 루터는 그가 초기에 사용했던 의의 개념을 매우 증오하고 있었다. 루터가 로마서 강해(1515-16)를 시작한 이후로 의를 각자에게 자신의 것을 주는 미덕으로 보는 것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이 시작되었다.36) 루터가 생각하는 믿음의 의란 (1) 하나님에게 속해 잇는 의라기 보다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로서의 의 (2) 사람들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유효한 의 (3)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그 자체로서의 의 이와 관련된 믿음의 중요성은 로마서 7장에 대한 주석들에 잘 설명되어있다. 하나님에게 속해있는 유일한 의는 믿음의 의다. 이것이 공의에 대한 인간의 기준에 의해서는 부적절한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인류를 심판하시는 기준이다.37) 루터의 근본적인 의도는 분명하다.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자 하신다. 그리고 이 심판의 근거가 되는 것은 믿음의 의이다. 즉 루터는 믿음의 의를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여겨질수 있음에 근거해서, 죄인들의 공과에 관계없이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선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루터의 어휘와 신학적 틀은 새길의 계약신학을 반영하고 있다.38) Dictata의 과정동안에 루터가 겸손을 믿음에 반드시 필요한 결과로서, 그리고 칭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선결조건으로 여겼다. 그러므로 칭의에 있어 겸손의 역할과 관련된 루터의 진술과 믿음과 관련된 진술을 연결시켜 볼때, 믿음의 의는 루터신학의 기초가 되는 계약신학의 측변에서 칭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선결조건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비록 은총, 믿음, 또는 겸손이 칭의에 유효한 것으로 이해된다 하더라도, 궁극적인 원인은 정해진 구원순서에 근거한 신적계약이다.39) 새길의 계약신학을 토대로보면 인간의 도덕적 행위의 본래적 가치와 계약의 측면에서 부과된 가치 사이에는 근본적인 불일치가 존재한다. 루터는 하나님앞에서 유효한 의는 각 사람에게 모범을 보여주신 예수를 뒤따르면서 각 사람의 완전한 비하를 통해서만 이룰수 있다고 보았다. 계약을 통해, 하나님은 겸손과 비하를 믿음의 의로서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셨다. 그런데 이 믿음의 의는 인간의 시각에서는 중요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시각에서만 유효한 계약적 의이다.40) Dictata의 마지막부분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몇가지 점을 발견할 때 루터는 새길의 구원론과 결별하였다는 것이 맥그래스의 논지이다. 인간이란 본성적으로 악에 빠질 경향을 보인다는 새로운 확신을 통해, 인간이 본성적으로 계약속에 표현된 대로 신적인 주도권에 필요한 반응을 보일수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루터는 더 이상 인간이 은총의 선물을 받기 위해 자신에게 요구되는 진정한 겸손을 할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인간은 먼저 이같은 진정한 겸손을 얻기 위해 은총을 필요로 한다.41) 1515년 말엽에 이 모든 것이 변화되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란 이제 인간 안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사역이지, 결코 인간이 자신의 순수한 본성적 능력으로 하나님께 보일수 있는 반응으로서 이해되지 않았다.42) 루터의 신학적인 혁파는 실제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의가 믿음이라는 깨달음과 연관된다. 그러나 그 믿음이 인간으로부터 보다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어진 것으로 인식되지 않는다면 이것은 그의 딜레마를 해결하는데 실패하고 만다. 루터는 하나님의 의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기초위에서 하나님이 죄된 세상속의 죄인을 다루는 방법에 대한 그의 이해를 수정하는 길고 고통스런 과정을 시작해야만 했기 때문에, 이 혁파는 루터 초기의 신학적 전개의 끝이라기 보다는 시작을 나타낸다는 것이 맥그래스의 견해이다.43) 그렇다면 이 하나님의 의는 무엇을 통해서 나타나는가? 바로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 안에서 나타난다.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그의 고난과 십자가 안에 나타난 그의 계시안에 숨어계신 하나님의 현존을 인식하는 자가 바로 십자가의 신학자이다.44) 사람이 높이 올려지기 위해서는 그는 먼저 깊은 심연에로 떨어져야 하고, 그가 하나님에 의해 높임을 받기 위해서는 그는 먼저 저주를 받아야만 하며, 그가 영적으로 살수 있기 위해서는 그는 먼저 육적으로 죽어야만 한다.45) 인간에 대한 가혹한 심판을 거쳐 지나감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을 죄인으로 만들고 그리하여 낯선 행위(opus alienum)를 실행한다. 그러나 그 안에서 이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에게 자비와 은총을 달라고 외치도록 이끌어가기 때문에 그것은 간접적으로 본래적 행위(opus proprium)를 실행한다.46) 이 책에서는 루터의 종교개혁 신학사상의 기원과 성격을 규명하고 있다. 루터는 정립되지 않는 혼동스러운 칭의론의 문제에 직면하여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찰하기 시작했다. 맥그래스는 이 책에서 루터의 하나님의 의에 관한 새로운 발견이 어떻게 그의 칭의 교리에 대한 철저한 재평가를 필요로 하게 되었고, 결국 루터를 십자가 신학으로 이끌었는지를 증명해 준다.47) 신학적 대전환은 이신칭의의 교리를 재발견함으로써 시작 되었으나 궁극적으로는 십자가 신학으로 귀결되었던 것이다.48) 루터는 하나님의 의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기초 위에서 하나님이 죄된 세상속의 죄인을 다루는 방법에 대한 그의 이해를 수정하는 길고 고통스런 과정을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 이 혁파(이신칭의 신학)는 루터의 초기 신학적 전개의 끝이라기보다는 시작을 나타낸다는 것이 맥그래스의 견해이다.49) 맥그래스는 루터의 종교개혁 의제가 세가지 요소에 집중되어 있음을 간파한다.50) 1)윤리와 도덕개혁 2)영성의 개혁 3)교리의 개혁이 그것이다. 맥그래스에 따르면 루터가 교리의 개혁을 가장 중요한 개혁의 의제로 생각하였다고 밝힌다. 이 교리의 개혁을 위해 루터는 르네상스 인문주의, 비아모데르나(Via Moderna)의 유명론, 그리고 중세후기 어거스틴주의 등으로부터 사상적, 방법론적 통찰을 얻었다. 루터는 죄인이 하나님의 의를 어떻게 만족시킬 수 있는가라는 중세말기의 반(半)펠라기우스적 구원론을 수용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죄인을 의롭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경륜임을 깨달은 후, 루터는 이 통찰을 십자가 신학이라는 포괄적인 신학적 프로그램으로 확대한 것이다. 맥그래스에 의하면 루터의 십자가 신학은 5가지의 주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1)십자가 신학은 계시신학이기 때문에 모든 사변적 신학과 대치된다. 2)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는 간접적일 뿐 아니라 신앙의 눈으로만 인식할 수 있다. 3) 십자가에 나타난 신의 계시는 인간의 이성과 윤리에 대한 신뢰를 깨뜨린다. 4) 믿음의 눈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 안에 숨겨진 하나님을 인식하게 된다. 5) 하나님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고난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신다. 루터는 중세 후기의 학문적 토대의 변화 가운데에서 흔들리는 신학적 정리에 직면하였다. 루터의 십자가 신학은 루터의 하나님의 의에 대한 연구과 밀접하게 관련되었다. 그는 이 책의 마지막부분에서 교회와 신학의 진정한 중심을 다시금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세우고 있으며 십자가 신학의 의미를 되새겨준다. 십자가로 돌아가라 (The Enigma of the Cross)- 맥그래스는 확실히 이 십자가신학에 대한 가장 강력하고도 근본적인 이해를 갖고 있다. 최근에 출판된 "Alister E. McGrath & Evangelical Theology"51)는 정성욱교수52)가 편집한 책으로 맥그래스의 주된 신학사상을 분석해 준다. 특히 1부의 1장에서는 Graham Tomlin이 “맥그래스의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신학”의 주제를 다룬다. 이 글에서 그는 맥그래스의 명저 “십자가로 돌아가라(The Enigma of the Cross)"를 심도있게 다룬다. 이 책에서 맥그래스는 현대 기독교의 위기는 적실성(외적인 위기)과 정체성의 위기(내적인 위기)로 나타나며 이 위기에 대한 해결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부활에 나타난 기독교의 정체성 회복에 달려있다고 역설한다.53) 그가 이 책에서 밝혀낸 십자가의 중요성은 “십자가는 현재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속해 있는 상황을 조명해줌으로써 인간실존의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게 하는 열쇠”라는 점이다.54) 신자들에게 있어 그가 현재의 고난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에 함께 참예하게 될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세상의 염려와 근심이 끝났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바울의 표현에 빌리자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박힌 것이다.(갈6:14) 그는 이 책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께서 기독교 믿음의 중심과 핵심에 놓여있다고 하는 근본적인 주장과 그리스도인의 실존에 대한 십자가의 함의를 드러내는 것이 기독교 신학, 윤리와 영성의 주된 기능이라고 하는 근본적인 주장을 발전시킨다. 바울과 신약성경 또 초대교회를 통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서 생겨나왔으며, 결과적으로 우리를 포함하는 기독교전통은, 예배와 기도라는 특별한 형태를 통해 구체화되었다. 이 형태는 기독교의 정체성과 연속성을 세우고 보존한다.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어야한다것이 맥그래스의 논리이다. . 내가 정말 몰랐던 십자가 (Making sense of the cross)- 이 책은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관한 2000년전 기독교회의 통찰의 보고에 접근하는 것이다.55) 이 책 1-2장은 2000년전 갈보리 십자가의 처형장과 부활의 소문으로 술렁이던 예루살렘의 현장에 서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당시의 상황을 재현시켜준다. 3장에서는 그 2000년 전의 십자가가 오늘 나의 삶을 변화시킬수 있는 십자가로 찾아와야 됨을 강조한다. 맥그래스는 하나님에 대한 언어의 의미를 만들어내기 힘겨워하는 현세에(secular) 대해서 십자가의 적실성(relevance)을 강조한다.56) 하나님의 이미지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묵상되는 곳으로 초대한다. 이책 4장에서는 신약성경에 나타난 다섯 이미지를 설명한다. 즉 1. 전쟁터 이미지- 대반전, 승리, 자유, 이미와 아직, 2.법정이미지- 칭의, 양자삼음. 3.관계이미지-화해, 용서, 소중하게 여김. 4.감옥이미지- 속박으로부터의 해방, 죄로부터의 해방, 속전, 구속(redemption), 감옥문의 파괴. 5.병원이미지- 치유, 완쾌를 바라봄, 의사에 대한 신뢰. 죄인인 동시에 의인. 구원의 다섯가지 이미지들은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보여줄 뿐 아니라 세상과 우리 자신에 대한 우리의 비전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보여준다.57) 그의 십자가 신학은 한마디로 사변적 신학이 아니다. 경험적 신학이다. 그는 신학을 뛰어넘는 체험에 신학적 우선권이 있다는 신념이 있다.58) 맥그래스의 신학 작품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신학의 심장부에 정면으로(squarely) 위치한다.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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