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처음
일본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전철을 탔을 때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전철 안에서 졸고 있는 일본인이 많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리에 앉아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있는 일본인이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유럽의 선진국에서 온 사람들은 ‘저렇게 무방비로 자고 있다가 짐이나 지갑을 도둑맞지
않을까’하고 걱정한다고 합니다. 또, 아시아의
개발도상국에서 온 사람들은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잠을 충분히 못자는 바람에 무척 피곤한 게 틀림없다’며 일벌처럼 일하는 일본인을 동정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그들도 일본에서 오래 지내는 동안 깨닫기 시작합니다. 일본인이 ‘자는 것은’ 전철
안에서 뿐만 아니라 회의석상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정말 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눈을 감고 ‘자는 척(たぬき?入り)’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말이죠.
그런데, 일본인은 왜 잠자는 척을 하는 걸까요? 물론 정말 자는 경우도 있습니다. 도쿄나 오사카
등, 대도시에서 일하는 사람의 경우,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이 느낀 것처럼 피곤해서 잠들어버리는 일도 많을 것입니다. 직장과 집이 멀어 원거리 통근을
해야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도쿄에서 일하는 사람의 경우, 도쿄 주변에 집을 사서,
편도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가량 걸리는 거리에서 다니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 때문에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밤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상이다 보니 전철 안에서 깜빡 잠이 들고 마는 것이겠지요.
잠자는 척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남들과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기분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인은 모르는 사람이나 친하지 않은 사람과 눈이 마주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구미 등에서는 전철에서 맞은 편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아는 사이가 아니라도 서로 생긋 웃습니다. 이것은 ‘나는 당신의 적이 아니다’라는 신호라고
합니다만, 매우 우호적인 인상을 줍니다. 일본에서는 같은
상황인 경우, ‘시선 처리가 난감하다(目のやり場に困る)’고 합니다.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뜻인데, 이것은,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는 사람끼리라도 엘리베이터와 같이 밀폐된
공간에서는 모두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몰라 문 위에 층수를 알리는 램프를 계속 쳐다보고 있고는 합니다.
다시 말해 일본인은 일반적으로 눈이 마주치는 것에 대해 서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철이나 버스에서 모자를 깊이 눌러쓰거나, 앞머리나 옆머리를 길게 늘어뜨려 얼굴을 가리고 있는 사람도 타인과 시선이 마주치는 것을 꺼리는 마음을 갖고
있는 듯 합니다.
또, 회의 때에 눈을 감고 있는 이유 역시 시선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나타나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에는 ‘눈은 입만큼이나 말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것은 ‘눈은 입으로 말하는 것과 같이 많은
것을 말한다’는 뜻으로, 남의 눈을 보면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 때문에 눈을 마주치는 것으로 인해 속마음을 읽히고 싶지 않다는 것이 아닐까요? 일본의 회의가 길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긴 회의에
진절머리가 나 있는 기분을 들키지 않도록, 혹은 자신과 반대 의견을 갖고 있는 상대에게 자신의 본심을
들키지 않도록 눈을 감고 생각하는 척을 하는 것입니다.
또,
윗사람에게 눈을 너무 맞추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예의라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매너
가이드북에 따라서는 윗사람과 이야기 할 때는 상대방의 눈을 보는 것보다 목 언저리를 보는 것이 실례가 되지 않는다고 쓰여 있는 것도
있답니다.
이제는 일본을 방문해서
전철을 탔을때 졸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겠지요?
「일본어저널
4월호」(常葉學園大學
외국어학부 淸ルミ 교수 글, 다락원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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