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부인 이설주가 ‘남조선 화장품’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한국인 피부에 적합한 화장품이란 점이 선택 요건이 됐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서울종합예술학교 최선임(패션예술학) 교수는 “북한에서 반감이 심한 일본산 S브랜드를 사용할 경우 부담이 따르고, 서방 화장품은 잘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한국산에 호기심을 보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설주는 출범 1년차 김정은 체제에서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지난 7월 첫 등장 때부터 파격적인 패션 스타일과 거침없는 행동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은하수관현악단 가수에서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 동지’로 불리며 평양판 신데렐라가 된 것이다. 이름을 드러낸 첫 무대가 외교사절까지 초청된 능라인민유원지 개관식이었지만 예상보다 훨씬 당찬 모습이었다. 김일성 배지를 떼낸 대신 브로치로 멋을 낸 옷차림에 김정은과 팔짱을 낀 모습은 북한 주민은 물론 외부 세계에도 충격을 던졌다.
그녀의 구체적인 신상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응원차 남한을 다녀갔고 중국 유학(성악 전공)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2009년 결혼해 아이를 하나 두고 있다고 국정원은 밝힌 정도다. “평범한 집안 출신”이란 것이다.
이에 대해 한 탈북자는 “이설주는 북한의 외자유치를 담당하는 이광근 합영투자위원장의 딸”이라고 주장한다. 김일성종합대 독일어과를 졸업한 이광근은 무역기관 대표와 무역상(장관)을 지낸 경제전문가다. 김정은 시대가 문을 연 직후인 지난 2월 현직에 임명됐다.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 자신의 인맥인 이광근의 딸을 김정은에게 소개한 것이란 설명이다. 이 탈북자는 “이광근의 부친은 김일성 주치의로 전용 의료시설인 봉화진료소장을 지낸 이영구 박사”라고 덧붙였다. 로열패밀리와 밀접한 관계인 이설주의 집안이 간택 배경이란 얘기다. 국정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와 다르다”는 입장이다.

김정은 공개 활동의 70%를 따라다니던 이설주는 요즘 두문불출이다. 9월 초 공연 관람 이후 외부활동이 없어 행적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자 11월 초 잠깐 모습을 보였지만 다시 잠수 상태다. 임신설이 유력하지만 확인된 정보는 없는 상황이다.
김정은은 올 한 해 놀이공원에 푹 빠져 지냈다. 그는 평양 등지에 30개 이상의 테마파크를 새로 짓거나 수리하도록 했다. 자신이 유학한 스위스의 알파마레 워터파크가 모델이다. 지난여름 문을 연 능라도 물놀이장과 곱등어(돌고래의 북한식 표현)쇼 시설도 여기에서 따왔다. 5월에는 평양의 대표적 놀이시설인 만경대유희장을 찾았다가 잡초가 난 걸 보고 역정을 낸 게 북한 언론에 보도돼 화제가 됐다. 세계적 유희시설을 어린 시절 경험한 김정은에게 평양의 낙후된 놀이시설은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란 분석이다.
최근에는 서해 남포 앞바다의 바닷물을 50㎞ 이상 끌어들여 해수(海水) 수영장을 만드는 공사가 한창이라고 한다. 김정은이 “외국처럼 대동강에 식당이 딸린 유람선을 띄우라”고 지시해 조선소에서는 서구형을 본뜬 유람선박이 건조 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대동강 유람을 위한 케이블카 건설까지 검토되고 있다는 첩보도 있다.
민생과 동떨어진 지시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에는 평양 근교 북한군 기마중대를 찾아 “근로자·청소년을 위해 승마장으로 바꾸라”는 지시를 내렸다. 정부 당국자는 “김정은의 귀족 마인드가 드러난 대목”이라며 “북한 실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느낌”이라고 꼬집었다. 한국의 경우도 승마 인구가 2만5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0.05%에 불과한 형편인데 북한 주민을 위한 승마장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4월 첫 공개연설에서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한 발언이 공염불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지난 한 해 뜨고 진 평양의 별들을 살펴보면 ‘믿을 건 핏줄뿐’이란 김정은의 생각이 여실히 드러난다. 평양의 로열패밀리들이 입지를 다졌고, 최고 권력자의 눈 밖에 난 당과 군부 인사는 가차 없이 숙청과 강등을 당했다.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은 잇따른 튀는 행동으로 화제가 됐다. 오빠의 공식 행사장에 등장해 뛰어다니고,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 모습이 관영 TV에 생생히 잡혔지만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모양새다. 지난해 12월 김정일 장례식 때 눈물짓던 모습에서 명랑소녀로 탈바꿈했다.
고모인 김경희 노동당 비서와 그의 남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은 후견그룹의 쌍두마차다. 이들 부부는 김정은의 기마중대 방문 때 다른 간부들과 달리 금속장식의 고삐가 달린 말을 타고 등장해 특별한 존재임을 과시했다. 김경희는 아버지와 오빠가 일궈놓은 김씨 왕조의 안방마님 격이다. 9월 싱가포르에 병 치료를 다녀올 정도로 건강에 문제가 있지만 김정은에 대한 영향력은 가장 큰 인물로 꼽힌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군부 강경파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의 주역으로 지목되는 김격식은 지난달 국방장관 격인 인민무력부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총참모장 시절인 2009년 초 갑자기 일선 군단장으로 방출돼 강등설이 나왔지만 우여곡절 끝에 재기에 성공했다. 김정일은 ‘우리 격식이’라고 부르며 간부들 앞에서 “나와 동무는 격식이 없는 사이”라고 힘을 실어줬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12일 로켓 발사를 책임진 노동당 군수공업 담당 비서 박도춘과 기계공업부장 주규창도 떠오른 실세 면면에 막판 합류했다. 4월에 이어 또다시 실패했다면 어떤 운명을 맞았을지 모를 일이다.
몰락의 쓴맛을 본 건 이른바 ‘운구차 군부 4인방’으로 불리는 이들이다. 장례차 왼편 맨 앞에 섰던 이영호 총참모장은 7월 전격 숙청돼 행방이 묘연하다. 김정각 무력부장은 한직인 김일성군사종합대 총장으로 옮겼다. 한때 군부에서 잘나갔던 김영춘 차수도 당 민방위부장을 맡아 힘을 잃었고, 보위부의 최고 실세이던 우동측은 뇌졸중으로 거동이 어려운 것으로 파악된다.
김정은 정권의 지난 1년은 권력 승계에 안착하고 군부 숙청 같은 충격요법을 통해 일단 불안정하지만 순조로운 출발을 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장거리 로켓 ‘은하 3호’의 발사 성공은 선군 통치를 정당화하고 주민 충성심을 결집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갈 길은 멀고 험하다.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김정은 체제가 개혁·개방의 길을 선택할 것으로 기대했다. 미모의 퍼스트레이디 이설주와 함께 자본주의식 공연을 보고 농업개혁에 나설 조짐을 보이자 김정은의 변화를 예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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