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禹) 임금이 수토(水土)를 평정하고 제후(諸侯)들을 도산(塗山)에서 회합할 때에, 부루도 도산에 가서 우 임금에게 조회하였다. 그 뒤에 단군은 당장(唐藏) 땅에 옮겨 살다가 중국 상(商) 나라 무정(武丁) 8년에 이르러 죽었다.
기언(記言) 제32권 원집(原集) 외편단군세가
고대의 기록을 종합해 보건데 부여의 시조는 해부루가 맞으며 그는 자칭 천제의 아들이라고 했다. 즉 천자이다. 고대의 천자는 고조선의 임금이었고 그 후손중에 해부루가 부여의 시조가 되면서 천자라고 한것이다. 그렇다면 고조선의 정통계승자는 부여이다.
朝鮮王滿,燕人。自始燕時,嘗略屬真番、朝鮮,為置吏築障。秦滅燕,屬遼東外徼。漢興,為遠難守,複修遼東故塞,至浿水為界,屬燕。燕王盧綰反,入匈奴,滿亡命,聚党千餘人,椎結蠻夷服而東走出塞,渡浿水,居秦故空地上下障,稍伇屬真番、朝鮮蠻夷及故燕、齊亡在者王之,都王險。
전한서
조선왕 위만은 원래 연나라사람인데 연나라가 진번과 조선땅을 빼앗고 장벽을 쌓았다.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망시키자 요동밖에 속했다. 한나라가 흥하자 요동의 옛 장성을 수복하여 패수를 경계로 하였다. 연왕 노관이 반란을 일으켜 실패한뒤 노관은 흉노에 망명하고 위만은 무리 천명을 이끌고 장성을 나와서 조선사람의 복장을 하고 조선사람처럼 머리를 땋아서 장성을 나온뒤 패수를 건너 진나라의 빈터인 장성위아래에 거처했다. 위만은 잠시 진번의 사병으로 있었다. 조선은 옛날 연국과 제국의 망명자들의 왕노릇하고 있었고 왕험에 도읍했다.
사견으로는 부여의 해부루가 천자이고 한씨 조선은 해부루에 종속적인 형태를 띄었을수도 있다고 본다.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한씨조선이 칭제하고 독립했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고대의 천자의 정통성은 바로 부여의 왕이다. 그래서 고구려와 백제가 부여의 계승자라고 그렇게 강조한 것이다.심지어 신라조차도 부여의 핏줄이라고 하는 기록도 있다.
《삼국지》에 “채풍과 요광이 고궁(高宮)이 끝내 두 군(郡)에 해가 된다고 여겨 군사를 일으켜 정벌하였다. 궁이 거짓으로 항복하면서 강화(講和)하기를 청하자, 두 군이 진격하지 않았다. 그러자 고궁은 몰래 군사를 파견하여 현도성을 공격해서 후성(侯城)을 불살랐다.”
廣陽國。高帝燕國,昭帝元鳳元年為廣陽郡,宣帝本始元年更為國。莽曰廣有,戶二萬七百四十,口七萬六百五十八。縣四:薊,故燕國,召公所封。莽曰伐戎。方城。廣陽,陰鄉。莽曰陰順。
전한서
광양국은 고제가 설치한 연나라인데 중략 계현은 옛연나라이고 방성현이 있다.
광양이라는 지명은 연나라수도와 관련된 지명으로 지금의 지리개념으로는 베이징을 말함이다. 그럼 이곳에 방성이 있고 그곳에 한후성이 있고 현도성도 그근처라는 이야기가 된다. 즉 지금의 지리개념으로도 고조선의 땅이 베이징을 포함하고 고구려의 현도군이 베이징일대를 포함한다는 설명이 된다. 조선과 청시대에도 많은 학자들이 이런 기록을 접하고 있었으니 대략 고조선과 고구려가 베이징을 점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물론 지금 바보같은 국개학자들과 국사편찬위원회의 무능한 학자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욕먹어도 싼것이다.
탁군은 내가 그 위치를 찾았다 바로 태원시의 남쪽이었다. 결국 한씨조선역시 그 영토가 광대했음을 알수있다.
해씨는 고씨와 부여씨로 이어지고 고씨는 발해대씨로 금나라완완씨로 청나라 애신각라씨로 이어진다. 부여씨는 이씨와 여씨등으로 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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