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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북한정권이 빨리 무너져야하는 이유, "박스에 아기 시체가 가득 차면 밖으로 버려졌다"

참빛7 2011. 3. 26. 03:29

 

"박스에 아기 시체가 가득 차면 밖으로 버려졌다"
북한정권을 하루빨리 정리해야 할 理由(2)

북한인권 최악의 慘狀(참상)은 강제로 송환된 탈북여성에 대한 「영아살해」와 「강제낙태」이다. 이는 북한당국이 구류장 등에 수감된 임신한 여성의 아이를 강제로 죽이는 만행을 가리킨다. 남한의 종교단체는 천안함 爆沈 후에도 북한정권에 대한 소위 인도적 지원을 하려고 발버둥치지만 『저들을 죽이지 말라』는 목소린 내질 않는다.
 
 북한민주화위원회(대표 김태진)가 2010년 5월 펴 낸 「북한인권실태보고서」 에 실린 탈북자 증언이다.
 
 
『OO구류장에서 보위원이 배 나온 여자를 불러냈어요. 제 옆에서 배를 차기 시작하는데, 가슴이 답답해지고 정말 저도 같이 소리를 지르고 싶었어요. 결국 그 여자는 거품 물고 쓰러졌고 일어나지 못하자 밤 10시경 군의가 와서 병원으로 데리고 갔어요. 그 이후로 여자를 보지 못했어요(탈북자 신 모씨 증언)』
 
 『중국에서 임신해 잡혀온 여자들도 있었는데 벽에 그 4명을 세워놓고 안전원들이 배를 마구 발로 찼습니다. 한 번에 애가 떨어지면 그나마 낫지요. 2명은 낙태되었는데 나머지 2명은 그러지 못해 병원에 데려갔습니다...그렇게 강제 낙태시키고도 그 다음날 바로 노동을 시킵니다.(탈북자 이 모씨 증언)』

 
 <『태어난 영아에 독극물을 주사해 죽였다』>
 
 「영아살해」와 「강제낙태」는 몇몇 여성이 당한 예외적 유린이 아니다.
 
 2009년 통일연구원에서 출간한 북한인권백서는 강제 송환된 탈북여성의 인권침해 사례를 상세히 소개한다. 2007년과 2008년 무렵 이뤄진 50여 명의 탈북여성 인터뷰는 일관돼있다. 탈북한 뒤 강제로 집결소나 구류장에 송환됐을 때 임신해 있다면 아이는 죽인다!
 
 『운동장 100바퀴를 돌리게 하여 60바퀴를 돌다 실신하여 유산한 여성』,『영아를 조산시킨 뒤 죽이라고 명령하자 정신착란을 일으킨 여성』,『강제노역 중 지도원의 구타로 유산한 여성』,『강제로 약물을 주입해 6개월 된 태아를 죽인 경우』,『아이를 출산한 뒤 비닐로 덮어서 죽인 경우』,『태어난 영아에 독극물을 주사해 죽인 경우』,『임신여성을 운동장을 돌게 해 배를 발로 차서 낙태시킨 경우』 등 인간 생지옥의 모습들이다.
 
 『임신한 여성의 배를 걷어차는 일은 일상적』 이라는 탈북여성들의 증언은 중복된다. 한 탈북여성의 인터뷰이다.
 
 『무산 OOO에서 함흥 출신의 8개월 된 임산부는 중국아이를 임신했다는 이유로 강제낙태가 강요됐다. 운동장을 계속되는 형벌이 가해졌다. 이 임산부가 조산을 하자 아기를 비닐로 싸서 감방 안에 방치했다. 그러나 아기가 죽지 앉자 다른 수감자를 시켜 양동이의 물에 넣어 아기를 살해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펴 낸「북한인권백서2007」에도『아이를 비닐에 싸서 살해한 뒤 화장실에 버리게 하였다』,『온성 OOO에서 탈북여성 수감자의 출산한 아이를 비닐에 싸서 죽이는 것을 목격했다』,『청진 OOO에서 「중국 놈의 아이를 뱄다」는 이유로 아이를 낳자마자 비닐에 싸서 질식사시키는 것을 목격했다』,『구둣발로 임신부의 배를 걷어차서 강제 유산시키는 것을 보았다』는 등 온갖 끔찍한 증언들이 숱하게 나온다.
 
 <『박스에 아기 시체가 가득 차면 밖으로 버려졌다』>
 
 美國의 인권운동가 데이빗 호크의 「감춰진 수용소(Hidden Gulag)」는 영아살해에 관한 증언들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박스에 아기 시체가 가득 차면 밖으로 버려졌다』 는 증언은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인 『民族(민족)』의 절반이 지금도 겪고 있는 수모이다. 
 
 
《『산모가 보는 앞에서 수건으로 질식시켜』 : 南신의주 道집결소(2000년 5월). 증언자 최영화(25) 구금자 중 10명의 임산부가 있었고, 이 중 3명은 임신된 지 8개월 이상 된 여성들이었다. 崔씨는 산모를 돕는 일을 맡았다. 산모들은 분만유도 주사를 맞고 아기를 출산했다. 그러나 잠시 후 담당자들은 산모와 崔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기를 젖은 수건으로 질식시켜 죽였다. 산모는 실신하고 崔씨는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됐다. 다른 아기들도 산모 앞에서 죽음을 당했다.》
 
 《『박스에 아기 시체가 가득 차면 밖으로 버려져』 : 南신의주 道집결소. 증언여성 A(66) A는 7명의 아이를 받아냈지만 7명 모두 죽음을 당했다. 첫 번째 아기는 중국인과 행복하게 살고 있던 28세의 任이라는 여성의 아이였다. 그 아기는 산모가 중국에서 임신을 해 양양상태가 좋았기 때문에 건강하고 몸집이 컸다. A는 출산 당시 아이의 머리를 잡아 빼주었고, 탯줄을 끊어 주었다. A가 아기를 받아내고 모포로 감싸주었을 때, 경비대원은 아기의 한쪽 다리를 잡아채 커다란 플라스틱 박스에 집어 던졌다. 박스에 죽은 아기 시체들이 가득 차면 밖으로 옮겨져 묻히게 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아기를 박스 안에 던지라고 명령했다』 : 金이라는 여성의 출산을 도왔다. 산모는 10개월을 채우고 나온 건강한 아기를 출산했다. A가 아기를 쓰다듬어 줄 때, 아기는 그녀의 손가락을 빨기도 했다. 경비대원이 와서 A에게 소리 지르며 아기를 박스 안에 던지라고 명령했다. A가 머뭇거리자 경비대원은 그녀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고 이로 인해 A의 이가 부러졌다.》
 
 《『머리를 집게로 눌러 아기들이 숨을 거두게 만들었다』 : 이틀 후 강제 분만된 2명의 아기는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10개월을 채우고 나온 아기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비록 얼굴은 노래지고 입술을 파래졌지만 아기들은 여전히 눈을 깜박거리고 있었다. 잠시 후 경비대원들이 와서 아직 두 명의 아기가 살아있는 것을 보고 머리의 부드러운 부분을 집게로 눌러 아기들이 숨을 거두게 만들었다. 이 장면을 보고 A는 경비대원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거세게 항의했다. 그러나 그녀는 경비대원들에게 심하게 발길질을 당해 정신을 잃고 말았다.》
 
 《『비닐에 싸인 채 창고에 죽을 때까지 방치됐다』 청진시 농포 집결소(1999). 증언여성 B(30대 중반) 집결소 구금자의 80%가량은 여성이었고, 그 중 12명가량이 임산부였다. 경비들이 임산부들의 경우 「배신자의 자식」을 뱃속에 가졌다는 이유로 음식이나 물을 잘 주지 않았다. 하열을 일으키기 위해 배를 걷어차기도 했다. B는 몇 명의 임산부들이 끌려 나가, 낙태를 위한 분만유도 주사를 맞고, 다시 농포 집결소로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 후 출산을 위한 준비된 방에서 4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그 아기들은 바구니에 담겨 비닐에 싸인 채 근처의 창고에 죽을 때까지 방치됐다.》
 
 《『젖은 비닐봉지에 넣어 질식시켰다』 청진시 농포 집결소(2000). 증언여성 C C는 8개월 된 태아 3명이 낙태되고 7명의 아이들이 살해되는 것을 목격했다. 아기들이 태어났을 때 경비대원들은 아기들을 바닥에 뒤집어 눕혀놓았다. 어떤 아기는 즉시 사망했고, 어떤 아기는 계속해서 숨을 쉬었다. 이틀이 지난 후에도 생존해 있는 아기들은 경비대원들이 데려다가 젖은 비닐봉지에 넣어 질식시켰다. 다른 방의 문에 서 있던 女수감자들은 방바닥에 눕혀져 있는 아기들을 볼 수 있었다. 경비대원들은 아기들이 중국인의 피가 섞였기 때문에 산모들이 아기들이 죽어가는 것을 직접 보고 들어야 된다고 말하곤 했다.》
 
 《『강제낙태 후 다음날 강제노동에 투입』 온성 노동단련대(2001년). 증언여성 D(38) 10명의 임산부가 강제낙태를 당한 후 바로 다음날 강제노동에 투입되는 것을 목격했다.》
 
 * 5천 년 민족사에 이런 집단은 없었다. 생존을 위해 탈출한 자국민 여성의 아이를 강제로 落胎(낙태)하고 殺害(살해)하는 북한정권은 망해야 한다. 여기는 다른 어떤 변명도, 합리화도 있을 수 없다.

  
김성욱의 전체기사  
2010년 06월01일 07시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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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으로 삶의 고단함을 이겨내고 있어요"
북한정권을 하루빨리 정리해야 할 理由

<소용없어요. 단속 맡은 사람들도 다 마약을 하니까요>
 
 북한민주화위원회(대표 김태진)가 2010년 5월 펴 낸 「북한인권실태보고서」에는 북한의 마약 중독 실태가 실려 있다. 이 보고서는 2009년 8월부터 12월까지 한국과 중국에 있는 탈북자 106명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결과이다.
 
 보고서는 『북한주민들이 배고픔과 고달픈 생활고를 달래기 위해 선택한 것이 마약 복용이라는 사실이 이번 실태조사에서 밝혀졌다』고 적고 있다. 인터뷰 내용은 이렇다.
 
 탈북자 崔 모씨 :『심각한 것은 사람들이 「코내음」이라는 형식의 마약을 합니다. 마약의 효과는 음식을 안 먹어도 힘이 세진다고 해요. 그래서 그것을 하고 나면 한동안 배도 안 고프고 지치지도 않고 기분이 좋으니깐 많은 사람들이 중독되어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경로로 공급되는지 정확히 몰라도 회사사람, 농장사람, 가정주부 등 사람들이 마약을 해서 다 흐리멍덩해요. 모든 사람들이 늘 흐리멍덩한 상태로 일하고 살아가죠』
 
 탈북자 鄭 모씨 :『현재 북한 내 식량사정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마약으로 삶의 고단함을 이겨내고 있어요. 그래서 2005년에는 「마약금지」 포고령이 내려졌죠. 소용없어요. 검찰소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하고 단속을 맡은 보안서 사람들도 다 마약을 하니까요』
 
 <『국경지역 얼음 흡입자, 전체 주민의 70~80%』>
 
 마약 확산은 김일성·김정일 수령독재의 비참한 末路(말로)를 보여준다.
 
 북한은 70년대 말부터 외화벌이 수단으로 마약을 생산·밀매했으며, 80년대 말부터는 공산권 붕괴와 식량난 등으로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양귀비 재배면적을 영변, 장진, 부전, 함흥, 개성 등으로 대폭 확대했다.
 
 북한이 마약을 팔아 버는 달러는 최소 1천만 불. 1998년 외교통상부 보고서에 따르면, 같은 해 북한은 마약밀매 등 불법행위로 1억불을 벌어들였다 나온다.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마약의 생산·밀매는 일반주민의 생계유지를 위한 돈벌이 수단으로까지 발전했다. 아편흡입과 돈벌이에 맛을 들인 주민들이 늘어나면서 『북한은 마약으로 망할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2010년 1월25일 라디오프리아시아는 『북한 각 국경지역의 얼음(필로폰) 흡입자가 전체 주민의 70~80%에 이르고 있으며, 마약 밀매자 중 0.5~1.0%가 마약에 의존하고 있다』는 북한 내 통신원의 말을 전했다. 각계각층이 하다 보니, 「얼음」을 해보지 못한 청년은 한 시대 뒤떨어진 것으로 취급돼 따돌림 당하는 지경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북한에서 마약은 「賂物用(뇌물용)」으로도 각광을 받는다. 이른바 「얼음뇌물」이다. 탈북자들은 『상하층 구별 없이 당, 정, 행정 간부들도 마약을 흡입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으며, 출세 또는 각종 여러 가지 단속을 피하기 위한 뇌물에서도 마약을 건네는 것이 이미 주민들 속에서 생활화 되어 있다』고 전한다.
 
 <마약재배에 동원되는 아이들>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는 북한의 구조적 모순에 기인한다. 아이들은「백도라지」, 「약 담배」, 「외화벌이용 약초」등으로 불리는 양귀비 파종, 재배, 채취과정에 동원된다. 어른들은 몰래 훔쳐갈 가능성이 높지만, 저학년일수록 훔쳐갈 가능성이 낮은 탓이다.
 
 양귀비 생산에 동원된 아이들은 아직 피지 않은 꽃망울을 따서 씹어 먹거나 씨앗을 간식으로 먹곤 한다. 생아편을 비상약으로 사용하거나, 상습적으로 물에 타서 마시기도 한다. 마약에 친숙해진 아이들은 점점 마약에 중독돼 간다.
 
 아래는 북한인권시민연합의 「북한 아동권 실태보고서. 왕이라 불리는 아이들(2009년 刊)」에 나오는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백도라지 분조, 위장을 위해 양귀비에 백도라지라는 가짜 이름을 붙이고, 가장 지력이 좋은 땅에 양귀비를 심고 가꿨다...7월이면 어린 학생들까지 총동원돼 아편 원액을 추출했는데, 역한 냄새에 학생들이 쓰러지는 일도 많아 밭머리에 의료진까지 대기했다...원액을 뽑고 난 열매에 좁쌀처럼 생긴 고소한 노란 씨가 가득 차 있어 아이들의 간식으로 인기였고, 아편중독자가 생겨났다.』 (2000년 탈북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
 
 『양귀비 말린 것을 물에 풀어서 마시면 통증을 못 느껴 비상약으로 쓸 수 있어서 그렇게 불렀다...중학생들도 양귀비로부터 하얀 우유빛의 진액(즙액)을 뽑아내는데 동원되었다...어린 학생들은 그냥 약초라고만 들어서 아직 피지 않은 꽃망울을 따서 씹어 먹기도 하였다.』(2005년 10월 함경북도 경원군 탈북 김지연.)
 
 『국경지역 주민들 사이에 마약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는데 빨리 막지 않으면 중독자들이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다...알고 지내던 언니, 오빠들이 「얼음」이라는 것을 하는 것을 여러 번 보게 되면서 그것이 나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약에 손을 대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회적 추세 같다...간부들도 많이 하고 주변의 아는 어른들, 친구 오빠도 하는 것을 보았고 아이들은 그거 하면 기분이 좋다고 거리낌 없이 말하는 것을 많이 들었다.』(2006년 함경남도 허천군 탈북 정정화)
 
 『2004년 즈음부터 일반주민들 사이에서도 마약을 만들거나 파는 현상이 매우 심해졌다.. 얼음 빙두 아이스 총탄으로 불리는 마약이 주로 함흥시에서 나온다. 함흥에는 돈 있는 사람은 전부 마약에 손을 댄다고 해도 좋을 정도...주민들 사이에서는 함흥에서는 「두부」하는 것(파는 것)보다 「빙두」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2006년 12월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탈북한 김수영)
 
 『회령에서도 마약을 많이 하는데 학교를 그만두거나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마약을 한다.. 학생들 중에는 중학교 6학년생들이 많다...얼음은 물에 타 마시면 냄새도 나지 않고 증거도 남지 않아 걸려도 큰 문제될 것이 없지만, 불로 달궈서 빨래도 마시다가 잡히면 그 자리에서 바로 어디론가 끌려간다.』 (2007년 5월 함경북도 회령시 탈북 김옥화)
 
 
* 북한정권은 하루빨리 정리해야 한다. 북한문제는 김정일 이후 대한민국의 헌법질서가 投射(투사)되는 것 이외 다른 해결책이 없다. 굶어죽고, 맞아죽고, 얼어 죽는 데 이어 마약에 중독돼 흐리멍덩 살아가는 동포들을 언제까지 내버려둘 작정인가?

  
김성욱의 전체기사  
2010년 06월01일 06시45

http://cafe.daum.net/khc23467

 

출처 : 예수님이 주인된 교회를 꿈꾸며
글쓴이 : 조슈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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