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을 잊지 말자!
1964년 남한 경제력은 북한의 절반 수준이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외화 부족으로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있었다. 마침내 ‘수출 제일주의’ 결단을 한다.
박 대통령이 독일이 제공한 비행기편으로 독일을 방문, 광부와 간호원 앞에서 눈물의 연설을 하고 파고다 담배 500갑을 선물로 주고 온 것도 1964년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만으론 턱없이 부족했다.
당시의 심정에 대해 “내가 죽은 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는 말을 남겼다. 1·21사태 등의 공작을 펼친다.
다시 10년이 지난 1984년 최강국인 미국과의교역에서 흑자를 실현하기 시작했다. 경제적 자립 능력을 확보한 셈이다. 세계는 ‘한강의 기적’으로 명명했다. 이렇게 형성된 중산층과 고학력층은 1987년 넥타이부대로 성장하고, 지속가능한 민주주의를 이루는 토대가 됐다. 이처럼 1964년은 대한민국 도약의 원년(元年)이다. 6·3사태를 겪으면서까지 대일청구권 자금을 받았고, 이는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 등 산업인프라 구축의 종잣돈이 됐다.
젊은이들의 피땀은 세계 경제가 오일쇼크로 휘청거릴 때 ‘경공업→중공업’ 도약을 이뤄내는 원동력이 됐다. 최근 ‘응답하라 1994’ 드라마가 화제를 모았다. 물질적 풍요, 정치적 민주화가 이뤄진 1994년 대학생들이 40대가 되어 학창시절의 낭만을 회고하는 내용이다. 1960년대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야 했던 소녀들, 학업을 포기하고 장시간 노동을 했던 여공들, 독일 탄광과 월남 정글에서 목숨을 걸었던 청년들, 1970년대 사막에서 돌관작업을 마다하지 않았던 산업전사들의 희생과 헌신이 없었다면 ‘응사 세대’의 낭만은 없었다. 1964년의 교훈은 선명하다. 국민은 자식 세대에 무식과 가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고난을 견뎠다. 지도자는 결단을 했다.
올바르게 전해야하고, ‘응사 세대’는 그 시대를 살아 있는역사로서 알아야 한다 역사를 잊으면 그민족은 장래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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