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스크랩] 케이커 교회의 창시자 조지 폭스

참빛7 2014. 12. 7. 14:31

조지 폭스는 퀘이커교(친우회)의 창시자로서 내적 체험을 권위의 원천으로 삼았다
그의 내적인 빛에 대한 강조는 평화주의를 가르쳤고 인간의 상태에 깊은 관심을 갖게 했다
그는 많은 박해 중에서도 자비와 평화로 맞섰으며 옳다고 믿는 것은 끝까지 밀고 나갔다
조지 폭스는 퀘이커교의 창시자로서 1624년 7월에 잉글랜드 레스터스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직공 일을 하고 있었고 그도 아버지를 따라 구두 수선공의 교육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교육 정도를 알 수 있는 기록은 없다
그는 18세 때인 1643년에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가정과 친구들을 작별하고 집을 떠났다
그러던 중 1647년에 깊은 회심을 하게 되었다 이런 체험이 그로 하여금 영국의 전통적인 종교가
갖지 못하는 눈을 열게 했다고 그는 술회한다
그는 당시 영국 교회의 종교적 관습들을 부정적인 태도로 바라보았다 1649년에 노팅험의 한
교회에서 성령이 모든 권위의 길잡이라고 주장하며 설교하다가 투옥 당하였다
1650년에는 더비에서 '신성모독자'라는 죄목으로 투옥되었고 그곳에서 '퀘이커'(떠는 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는 출소 후에 영국 북서부 지역에서 큰 반응을 얻었고 본부를 북서쪽
울버스틴 그처 스워트모어 대학에 두고 활동했다 폭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여러 번 체포와 구금을
당했는데 선서를 행하는 일과 십일조를 납부하는 일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폭스는 1649-73년 사이에 무려 8년 간 구금을 당했다 그는 출감 후 감옥의 공포적인 분위기와
인권 개선을 위한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1660년에 왕정복고가 이루어지자 퀘이커교도들은 더 많은 박해를 당했고 1669년에 폭스는
아일랜드를 선교하고 돌아오던 중 마아거릿 펠과 결혼하였다
1671-73년에는 북아메리카의 영국식민지를 방문하여 선교하였고 77-84년에는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을 순방하며 선교를 했다 그러다가 1675년에 자신의 생애에 대한 대략적인 개관을 [일기]
(Journal)라는 책에 썼다 그 일기는 역사상의 유명한 자서전 중의 하나다
그는 개인적인 체험을 권위의 진정한 원천으로 간주하였다 결국 그가 경험한 내적 체험은
성경보다 더 우위를 차지하여 당시 청교도주의자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폭스의 내적인 빛에 대한 강조는 평화주의를 가르쳤고 모든 인간의 상태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갖게 했다

많은 박해 중에서도 폭스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와 평화로 맞섰다 그는 자신의 인격과 문필로
대적자들을 자기편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는 분명히 확신에 가득찬 사람이었다
옳다고 믿는 것은 어떠한 고난이 닥쳐도 밀고 나갔다 그것은 그가 얼마나 순수한 인물이었는지를
반증해 준다고도 할 수 있다 한편으로 그는 또 다른 교회를 창설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으나
그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으로 인해 결국 '친우회'(퀘이커)라는 조직이 탄생되었다
그는 1691년 1월 13일에 런던에서 사망하여 번힐 피즈 근처의 퀘이커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가 죽었을 때에 그의 신학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사람들조차도 그가 이룬 평화적 업적과
인격의 순수성을 찬양했다
윌리암 펜은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뜻 있게 살다가 갔다 그러나 사랑하는 폭스보다
더 그러했던 자는 없을 것이다"라고 그를 극찬했다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임마.누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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