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건축 잔혹사신학도 미학도 없는 흉물들을 어쩌나
한국 교회 최초의 서양식 교회 건물은 1897년 세워진 정동감리교회다. (천주교까지 포함하면 1892년 약현성당). 정동감리교회는 이문세의 노래 ‘광화문 연가’ 가사 중의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덮힌 조그만 교회당”인 그 교회다. 당시에는 화려한 서양식 건물이었겠지만 지금은 그리 튀지 않는 그야말로 ‘조그만 교회당’이다. 그리고 정동교회를 중심으로 성공회 대성당, 이화여고 등 아름다운 정동거리가 형성되었다. 일제하 평양의 산정현 교회 건물, 금강산 수양관 등도 아름다운 건축물에 속했지만 산정현 교회는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해방 이후 지역의 교회 건물은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이라는 점에서 다른 건물보다는 눈에 띄는 상징물이었지 지금처럼 주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흉물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교회 건축이 처음으로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끈 것은 여의도 순복음 교회였다. 조용기 목사는 1973년 ‘서대문 성전’ 시대를 청산하고 여의도로 이전한다. 백범 김구와 장준하가 해방 직후 중국에서 귀국했다가 미군의 반대로 다시 돌아가야 했던 비행장이 있던 여의도, 장준하에게 열등의식이 있던 박정희가 보란듯이 고등학생들을 동원해 대규모 군사 훈련을 시키던 ‘여의도 광장’에 조용기는 승부수를 던졌고 결과적으로는 성공했다. 아파트 단지와 방송사가 자리잡기 전, 여의도 국회 의사당이 완공되기 전 조용기의 승부수는 그의 배포를 보여주는 역사 속 한 장면이다. 워낙 허허 벌판이었기에 그의 시도가 돋보였을 뿐 건물 자체로는 세간의 비난을 받지 않았다. 한국 교회 건축사에서 최초로 비난을 받은 것은 강남구 역삼동의 충현교회였다. 충현교회는 1978년 120억의 예산을 들여 교회를 건축하면서 여론의 질타를 받기 시작했는데, <한국 경제 뉴스>의 분석에 따르면 당시 120억은 현재 750억 정도이며, 현재 충현교회의 부동산 시가는 1600억을 상회한다. 사랑의 교회 건축비가 900억인 점을 고려한다면 엄청난 액수다. 충현교회는 이후 고 김창인 목사의 세습, 그리고 세습받은 아들 김성관 목사와의 갈등으로 건물 못지 않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특히 충현교회는 2013년 <동아일보>와 건축전문잡지 <SPACE>가 건축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해방 이후 최악의 건물 20위에 오르는 ‘저력’을 발휘했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짝퉁 고딕 양식으로 개신교의 가톨릭 흉내내기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의 교회 새 건물은 굳이 이 지면에서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한국 교회의 수치가 되어 버린지 오래다. 반면 1981년 완공한 경동교회의 새 건물(유명건축가 김수근 송효상 설계)은 특이하게 본당을 지하에 배치함으로써 당시 강원용 목사가 사회 참여적인 목사로 알려 졌지만 그의 신학은 내면을 추구했다는 분석이 뒤따르기도 했다. 죽 쑤어서 개 주다 최근 예장통합 충성교회(윤여풍 목사) 건물이 이단에 넘어감으로써 한국 교회의 건축 잔혹사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 들었다. 충성교회는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하나님의 교회, 일명 안상홍 증인회)에 단독 낙찰됐다. 낙찰 금액은 감정 평가액의 절반을 웃도는 288억 원이었다. 하나님의 교회가 기성 교회 건물을 구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한 인천 큰 사랑교회(서만권 목사)도 지난 2009년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에 교회 건물 등을 매도하고 신도시로 이주한 사실이 있다. 큰사랑교회는 기존 교회터를 103억원에 넘겼다. 앞으로 이런 현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강남 개발에 따른 강북 교회들의 엑소더스가 정착율이 높았던 것은 사실이다. 1980년대 경제 호황과 자가용 급증의 시류는 주차장 넓은 교회를 선호하게 되었고 앞다투어 강남으로 이주한 교회들은 비교적 안착했다. 충현교회도 본래는 충무로에 있었다. 반면 강북을 고수한 연동교회, 새문안 교회, 경동 교회 등은 교세 감소를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분당 일산 개발에 따른 교회 이전의 2세대들은 강남 1세대를 따라 하다가 실패한 경우다. 특히 분당쪽은 교통 편의상 강남과 비슷한 성향의 주민들이 많은 터라 지역교회보다는 강남을 선호했다. 강남과 거리가 먼 일산 지역의 대형 교회들의 실패율이 비교적 낮은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미주 교민 교회는? 미구 교민 사회(서부)에서 전통적인 대형교회는 나성 영락교회와 동양선교교회였다. 후발 주자가 사랑의 교회였고 온누리 교회(유진소 목사)가 그 뒤를 이어 비교적 건축에 성공했다. 가장 잔혹한 경우는 나성 열린문 교회였다. 300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 건축비를 상정하고 시작한 건축은 결국 실패했고 열린문 교회(박헌성 목사)는 현재 교세가 축소된 교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샌디에고갈보리장로교회는 2008년 1,525만 달러에 달하는 미국 교회 건물을 목표로 잡았었다. 김종 목사는 그의 칼럼(2008년 5월 25일)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의 경륜에 따라 샌디에고갈보리장로교회의 새 생전 구입이 눈앞에 다가오는 축복을 받게 되었다"고 말했다. 당시 샌디에고갈보리장로교회는 옮겨가지도 않은 예배당 공사를 위해 총 178만 불(2008년 11월부터 2009년 6월까지)을 쏟아 부었다가 결국에는 2009년 10월 이전을 중단하기로 했던 슬픔이 있다. 남가주 동신교회(이전 담임목사 손병렬)도 교세에 비해 무리하게 건물을 매입했다가 현재 곤혹을 겪고 있다. 손병렬 목사가 포항중앙교회로 부임하자 교회 이전을 주도했다가 건물 유지에 힘이 딸리자 도피한 것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손목사의 한국 부임을 비판하던 교인들이었지만 동양선교교회 박형은 목사를 담임목사로 데려 오려다가 무산됨으로써 똑같은 비판을 받았다. 힘에 부치는 교회 건물 구입과 그에 따른 건물 유지가 모든 교회의 생존과 목회자 선택의 제일 조건이 되어버린 슬픈 장면이다. 이런 잔혹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LA에서는 한인 침례교회(박성근 목사)가 건축을 시작했다.
대형건물 선호는 가톨릭에 대한 열등감의 발로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을 짓는 과정에서 예산 부족 때문에 시작한 면죄부 판매는 종교개혁의 원인이 되었다. 우리 개신교인들에게는 ‘고마운(?)’사건일 수 있지만 가톨릭에게는 잔혹한 교회 건축 그 자체였다. 지금 교회 건물 자체는 관광지로 유명해졌지만, 구중 궁궐 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비밀에 붙여진 채 가톨릭에 대한 여러가지 음모론의 산실이 되고 있다. 교황 프란치스코가 잘하고 있지만 그도 바티칸의 돈줄까지는 개혁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자연계시의 비중이 높은 가톨릭 신학에서는 성물이나 건물에 신앙적 의미를 부여한다. 반면 개신교에서 교회 건물은 성전도 아니고 그냥 예배당으로서 건물 자체다. 그러나 목사들은 ‘성전’건축이라는 말을 스스럼 없이 하며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는 따위의 의미를 부여한다. 이런 행태는 걸핏하면 가톨릭을 이단으로 부르면서 가톨릭에 대한 열등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어쩌면 가톨릭에 대한 과도한 증오도 이런 열등감을 숨기려는 마음에서 온 건지도 모른다. 아니 백번 양보해서 경동교회처럼 건물에 신학적으로 의미를 부여해도 좋다. 그것이 안되면 지역사회와 균형을 이루는 미학적 측면이라도 가지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의 교회 건축은 이도 저도 아니다. 신학도 없고 미학도 없다. 그냥 ‘가장 크게’, ‘가장 화려하게’ 라는 신자유주의의 우상을 맹신하는 건축 주도 세력의 '신앙'을 여실히 보여줄 뿐이다. 가톨릭 영성가인 토마스 머튼은 <칠층산>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누군지 알고 싶으면 내가 어디 살고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머리를 어떻게 빗는지 묻지말라. 다만 내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위해 사는지 내가 사는 목적에 충실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으러. 이 두 대답으로 모든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더 나은 대답을 갖고 있는 사람이 더 나은 사람이다. 대형교회 건축에 매달리는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어디 살고, 어떤 음식을 먹고, 구체적으로 어떤 목적을 위해 사는지가 그대로 드러나는 자본의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자본의 신이라도 제대로 섬기면 될 터인데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한 예측도 잘 못하는 사람들이다. 건물에 의존하는 종교 사업은 기울어져 가는 사양산업이다. 이문세는 "언제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교회당은 남아 있다고 노래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가기 전에 교회당이 먼저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자본의 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예측에 실패하고 지금도 건물을 열심히 지어 대고 있다. 이 건물들은 머지 않은 세월에 흉물로 전락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의 신을 섬기는 신도로서 그들은 '자본주의 교리 공부’에 충실하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그 종교도 ‘오직 믿음으로’의 종교인가?
김기대, 편집장 / <뉴스 M>
|
<저작권자 © 뉴스 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교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동방 정교회 특징 (0) | 2014.12.07 |
---|---|
[스크랩] 모라비안교도 (0) | 2014.12.07 |
[스크랩] 종교개혁사 (0) | 2014.12.07 |
[스크랩] 한국교회사요약 (0) | 2014.12.07 |
[스크랩] 정택은의 한국 교회사 (0) | 2014.1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