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세례의 복음
현대교회의 중요한 관심은 성령론과 선교론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장로교회가 신조로 채택한 W. M. 신앙고백서에 전에 없던 "제34장 성령에 관하여, 제35장 하나님의 사랑과 선교에 관하여"란 장이 첨부되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는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기본적인 이해를 새롭게 했으면 합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핵심이 되는 성령세례의 체험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금세기에 와서 기독교 3대 세력의 하나로 각광을 받고 있는 오순절교회에서는 이 성령세례를 강조한 나머지 신자카드를 작성할 때 세례받은 날자와 성령세례 받은 날자를 분리하여 기록할 것을 요망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이 성령체험의 요청은 단순히 오순절교회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교회를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어느 목사님이 지난 주일 성령의 불세례에 대하여 설교했다고 하기에 제가 자세히 물어 보았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성령의 불세례, 성령의 세례라고 증거했습니까?
그 목사님의 의견을 신학적 견해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최초로 예수믿을 때 받은 성령은 중생의 성령 내지 중생체험이라고 하고 그 다음에 성령의 충만한 체험을 받아야 되는데 그 성령충만의 첫 체험을 성령세례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의 성령을 받은 모든 사람은 이 성령의 불세례를 통하여 성령충만한 생활로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것입니다.
이 목사님의 견해, 곧 오순절교회의 성령론에 의하면 중생 다음에 성령세례, 그 다음에 성령충만의 순서가 성립됩니다. 성령세례는 중생에서 충만으로 나아가는 연결점 내지는 출입구로 해석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본다면 우리는 두 말할 것 없이 오순절교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성령세례를 받기 위하여 성령대망 기도회를 자주 열어야 할 것입니다. 본격적인 은사의 세계로 들어가고, 성령충만의 정상적인 신앙생활 속에 들어가기 위해서 성령의 세례, 불세례의 황홀하고 뜨겁고 극적인 성령체험을 얻기 위해 발버둥쳐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와같은 성령세례의 강조가 우리 신앙생활에 대단히 유익하다는 것을 무시하고 싶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어떤 뜨거운 체험, 성령의 뜨거운 감동 속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성령의 열매를 나타내는 것을 보면 결코 이같은 성령세례의 효능에 대해서 부정적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들이 말하는 성령세례의 위치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기독교를 단순한 신비적 체험주의나 황홀한 은혜의 주관주의에 빠뜨릴 위험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들의 체험을 강조합니다. 그때 은혜받은 이후를 강조한 나머지 마치 그것이 기독교의 가장 특별한 은혜요, 그 이전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함으로써 무궁무진한 말씀과 기도의 세계의 문턱에서 좌초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린다면 현대의 오순절교회가 주장하는 성령체험이란 성령의 역사가운데 당연히 일어나는 지극히 작은 체험과 은혜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체험이 있던, 없던 우리는 무궁무진한 진리와 성령의 세계로 들어왔고 들어갈 수 있으며 또 끝없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성령의 세례란 용어부터 해석해 보십시다. 세례라고 하는 말은 푹 잠긴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세례란 말씀은 여러가지 의미로 쓰여집니다. "죄를 씻는다. 신앙을 고백한다. 새로운 생명을 받는다" 그래서 "믿고 세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신 말씀은 이상의 세 가지 의미를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성경에서 세례를 준다, 세례를 받는다고 할 때 단순히 성령의 세례, 성령충만한 최초의 경험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씻음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옷입고, 새로운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 하나님의 전체 구원역사를 함축하여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세례란 중생과 충만의 전 성령역사를 한마디로 축소한 말이지 중생 다음에 충만에 이르는 최초의 체험만을 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진짜 "밥티죠"란 차라리 성령충만보다는 성령으로 중생하는 것을 더욱 강조한 것입니다. 사람이 부정모혈로 태어날 때 그 부모의 생명의 세례를 받게 되는데 실상 그보다 더 큰 세례가 어디 있습니까?
이와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의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로 출생하고 성령에 속한 자로서 신령한 생애를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중생의 세례를 의식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물세례 예식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세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벧전 3:21).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해서,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금방 깨끗해지거나 정결해 지는 것이 아니지요. 중생을 통하여 새생명으로 출생함으로써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생명의 씨앗이 뿌려지고 생명운동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에 있어서 성령세례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근본적인 회개의 세례요 새로운 생명의 세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 하나님의 생명의 성령에 푹 잠기므로 새로운 생명, 하나님의 생명으로 출생합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근본적인 회개를 통과합니다.
이러므로 중생이야 말로 성령이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우리를 덮은 생명과 회개의 세례인 것입니다(눅 1:35). 이 중생에 있어서의 성령세례를 회화적으로 잘 표현한 신약의 말씀이 요 4:13-14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에서 죄많은 여인에게 말씀하셨지요.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날 때 하나님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같은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 샘물, 이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로 하여금 전에 원수였던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본능적으로 부르짖게 만들어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고백하게 합니다. 거룩하고 깨끗한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 아들의 생명이 우리의 더러움을 끝없이 씻어주는 샘물이 되어 죄짓고는 견디지 못하는 회개의 역사를 계속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림을 그리듯이 상상해 보세요. 우리 속에 영생하도록 콸콸 솟구치는 샘물이 있다는 것을! 그 샘물은 어린양 보좌로부터 흘러나옵니다. 우리의 영혼과 삶을 적시고 깨끗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고 아름답게 합니다. 우리가 여간 실수하고 죄를 지어도 그 솟아나는 샘물이 우리의 죄책과 양심을 말갛게 계속적으로 씻어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다(요 5:24)고 했고, 중생하는 그날에는 우리 속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물이 열린다고 한 것입니다(슥 13:1). 할렐루야! 여러분이 비록 죄많은 수가성 여인같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면 성령의 세례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생명,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중생케 하시는 성령의 세례입니다. 여러분 속에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체험하신 분은 아멘합시다.
여러분이야 말로 진짜 성령의 세례를 받으신 분입니다. 여러분 속에는 영생,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와 있습니다. 여러분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속에 계신 이는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십니다. 여러분은 성령의 인침을 받은 자입니다. "나는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 나는 성령으로 거듭났다!" 이것이 가장 큰 성령의 세례입니다. 이 성령의 세례는 우리가 예수 믿을 때 받은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들의 생각에는 이 중생의 성령세례로 대 만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와 달라서 중생의 세례를 받은 모든 신자에게 더 큰 권능과 능력을 주시기를 소원하고 계십니다.
요 10:10 하반절에 예수께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중생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이미 얻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생명을 주시되 더 풍성히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겠다는데 우리가 "아니요"라고 할 까닭이 없습니다.
생명을 주시되 더욱 풍성히 주시겠다는 영적 생명은 무엇입니까? 곧 성령의 충만한 세례입니다. 충만한 성령의 세례를 가장 잘 표현한 성경 말씀도 역시 요한복음에 있습니다. 초막절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37-39).
요 4장과 요 7장의 말씀을 비교해 봅시다. 4장의 대상은 죄많은 여인, 회개하지 아니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7장의 대상은 초막절을 지키는 무리,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4장에서는 주님이 그저 조건없이 내가 주겠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7장에서는 믿는 자가 받을 성령이라고 말씀했습니다. 4장에서는 성령을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라 했고, 7장에서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했습니다. 먼저 4장의 중생의 성령세례는 불신자가 예수 믿을 때 주어지는 것이요 그것은 주님이 주권적으로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 성령의 역사는 솟아나는 샘물과 같은 것입니다.
다음에 7장의 충만한 성령세례는 신자가 정상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주어지는 것이요 그것은 믿음으로 화합하는 자들에게 조건적으로 주어지는 것인데 그 성령의 역사는 생수의 강이 흘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중생한 신자에게 이 성령의 충만한 세례를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것을 명령하십니다.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 여기에 사용된 동사는 현재 수동 명령형입니다. 이것을 해석하면 "나는 중생한 모든 신자에게 충만한 성령, 풍성한 생명을 준다. 너희는 계속하여 받을지어다. 충만한 성령의 세례 속에 살아갈지어다. 성령안에서 성장할지어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한번 특급 Hotel에 투숙했는데 방안에 스팀 조절기가 있었습니다.
표시는 Hot, Middle, Light 세 가지였습니다. Hot에 맞추니 곧 더워지고, Middle에 맞추니 중간이고, Light에 맞추니 서서히 더워졌습니다. 저는 그 방에서 성령충만에 대한 심오한 교훈을 터득했습니다. "그렇구나! 하나님은 풍성한 생명을 주신다고 했고 성령충만을 받으라고 명령하셨다. 하나님은 신용이 있고 변덕이 없는 분이시므로 반드시 주신다.
특급 Hotel에 스팀이 계속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그런데 문제는 내게 달렸구나!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명령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서 나는 지금 뜨겁게 성령충만할 수도 있고, 적당히 미지근하게 될 수도 있고, 차갑게 살 수도 있구나! 문제의 Key는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받을 나의 자세, 나의 순종여부에 달려 있구나!"
저는 조용히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주여, 용서하소서. 내가 당신의 생명을 거절하였나이다. 내가 성령님의 소원을 거스려 행하였나이다. 내가 바로 찹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기로 작정하였나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속에 샘물과 같이 솟아나는 Light, 가벼운 성령님의 역사로 만족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생수의 강같이 흘러 넘치는 Hot, 뜨거운 성령님의 역사 속에 사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샘물과 같이 자기만 씻고 자기만 시원한 자리에서 일어나 강물과 같이 힘차게 흘러 타인에게 복음과 생명과 천국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샘물이냐! 강물이냐! 하나님은 여러분의 영적상태를 아십니다.
여러분 자신도 스스로의 영적상태를 압니다. 나는 샘물로 만족할 것인가? 나는 강물같이 넘쳐 흐르는 힘찬 성령의 역사를 받아들일 것인가? 이제 열쇠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충만하고 내일 그칠 수 있습니다. 어제는 충만하고 오늘은 거절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께서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강물이 힘차게 흘러 넘치는 장면을 생각해 보세요. 겔 47장은 바로 그런 그림입니다. 강물같은 사랑, 무성한 고기, 만국을 소성케 하는 약초들…. 강물은 또한 권능과 능력을 의미합니다.
성령충만한 세례는 권세있는 신앙생활, 능력있는 복음증거의 삶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눅 24:48-49).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충만이란 가득하다, 성취하다, 부족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에게 강물같이 권세있게 넘쳐서 우리로 하여금 넉넉히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십니다. 일마다 때마다 능력과 권능을 베풀어 주십니다. 성령세례는 성령의 충만에 이르는 첫 경험만이 아닙니다. 성령의 세례란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계속하여 권능과 능력을 부족함이 없이 공급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게 하는 성령체험 전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세례안에 살면서 끝없이 성령충만에 목말라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매일 매일 성령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됩시다.
그래서 우리의 뱃속에 우리의 영혼속에 차고 넘치는 생수의 강물로 만족한 신앙생활을 영위해 나갑시다. 이제 우리가 분명히 분별하여서 말씀에 목마르고 성령의 은사를 남발하지말고 복음을 전하기위해 조용히 성령의 은사를 사용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돌리게 하시길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
'교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양승훈 교수, "창조과학 운동은 세월호와 유사" (0) | 2014.07.31 |
---|---|
[스크랩] 파키스탄서 여성 대상 `산성액 테러` 잇따라 (0) | 2014.07.24 |
[스크랩] 교황 "사제 성추행은 신성모독..용서 간구"(종합2보) (0) | 2014.07.08 |
[스크랩] 제사상에 중국은 요즘 요리, 한국은 밤·대추 .. (0) | 2014.07.08 |
[스크랩] 피임용 생체이식 칩 나온다 (0) | 2014.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