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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가짜 국조단군상 철거

참빛7 2014. 5. 3. 14:55

예수가좋다오

가짜 국조단군상 철거

가짜 국조단군상 철거는 사회적 폐단 없애는 것”

단월드(이승헌) 맞서 사회정화 앞장서는 허태선 목사
2013년 01월 28일 (월) 09:50:44 양봉식 기자 sunyang@amennews.com

현재 이승헌 집단의 ‘단월드 명상센터’는 전국에 약 313개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예장 합신측 단(檀·丹)사상문제대책위원회(단대위)에 따르면 그렇다. ‘가짜 국조단군상’을 세우면서 뇌훈련 즉, 정충호흡·뇌호흡·단요가·뇌파진동 등의 컬트행위를 퍼뜨리는 단월드가 이같이 급속히 확산됨에 따라 이에 대한 단대위의 대처활동도 활발하다. 단월드가 주장하는 단군신화와 뇌교육에는 반기독교적인 사상이 많을뿐더러 이들의 교리가 기독교를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단군신화에 대해 역사왜곡을 하고 있어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전통문화라는 이유로 이들의 활동을 용인하는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단월드와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가짜 국조단군상 철거운동’을 펼치고 있는 허태선 목사(합신, 용인은총교회)를 만났다. <편집자주>


‘가짜 국조단군상 철거운동’ 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어떻게 이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요?
용인시기독교연합회 회장으로 있을 때부터인 것 같습니다. 단월드는 1998년 11월 경남 밀양에 있는 동광중학교에 최초로 1년만에 전국 공공장소와 국. 공립학교 교정에 가짜 국조단군상을 369기를 세웠습니다. 용인시기독교연합회 회장이 되었을 때 단군상 문제를 가지고 기독교연합회가 대책을 세우자는 여론이 형성되었습니다.

 

단군상 반대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1999년 6월 25일이었습니다. 당시 연합회가 연중행사 때문에 너무 바쁘다보니 처음에는 단군상과 관련된 상황만 접하게 되어 정확한 정보가 없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용인시에는 단군상이 4개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이승헌 집단의 단군상이 가짜라구요?
처음 단군상 문제가 거론 될 때만 해도 초등학교에 2개, 사업체에 2개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용인 포곡초등학교에 세워진 단군상에 가서 사진을 찍고 자료 수집을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자료를 모아 보니 이승헌 집단이 주장하는 단군상은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단군상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엉터리더군요. 그래서 1999년 8월 경 ‘단군상특별대책위원회’를 설립했습니다. 그때부터 용인시기독교연합회 회장과 단군상대책위원장을 겸직하면서 반대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용인시기독교연합회만으로는 이 거대한 조직과 대항하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가짜 국조단군상 철거운동’은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는지요?
당시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을 비롯한 4개의 기독교연합단체가 힘을 합쳤습니다. 전국교단의 목회자들이 다 동참했다고 보면 됩니다. 당시 한문화운동연합회 가짜 국조단군상을 전국에 3천 600개를 추가로 세우겠다고 했었습니다. 이는 전국 초, 중, 고등학교의 절반에 이르는 숫자입니다. 속수무책이었죠. 가짜 단군상 조형물을 설립한 단체가 민족주의적인 정서를 앞세워 이미 정부기관 사람들의 생각을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에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계의 반대를 기독교적 가치나 신념 때문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정부의 묵인 혹은 일부 공직자들의 비호 아래 진행된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이승헌 집단의 가짜 국조단군상을 우리나라 건국신화의 단군상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데요.
단군은 대한민국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그렇지만 단월드가 말하는 단군은 전혀 다릅니다. 민족적 정서를 이용해서 가짜 국조단군상을 만들고, 국민정서와 남북통일이라는 국민 염원을 앞세워 상업적 수단으로 이용하고자 한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건국의 단군과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부기관이나 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짜 단군상 철거운동’을 종교적 대립으로 보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계의 일부에서도 그렇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는 가짜 단군상 조형물이 세워졌을 때 종교적 신념보다는 사회적 해악으로 접근했습니다. 당시 단군상이 세워지기 시작할 때, 지성인이나 학계의 인사들이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부당성을 밝혔지만 신변위협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꺼리고 있습니다.

단군상 조형물의 일부를 파손해서 전국이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있었지요? 당시 사건은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용인시기독교연합회 회장직의 임기가 끝나고 그 이듬해인 2000년 1월 24일 오후 3시 경에 곡괭이를 들고 용인초등학교에 갔습니다. 가짜 국조단군상을 부술 생각으로 간 것입니다. 누군가는 시작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단군상을 받치고 있는 댓돌위에서 학교 건물 안을 보니 선생님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보였습니다. 사무실안에 있는 선생님들이 있는 곳을 향해 손짓으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선생님들 중에 한 분이 저를 발견하고 선생님들에게 제 모습을 보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약 10여명과 교장선생님도 함께 몰려 나왔습니다.

단군상 조형물 주변을 둘러싼 선생님들과 댓돌 위에 올라선 저와 대치상태가 되었습니다. 만약 달려들어 뜯어 말리면 단군상을 부술 수가 없으니까 선수를 쳤습니다. “나는 지금 극도로 흥분되어 있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가까이 오지마세요.” 이렇게 소리를 치니까 겁이 났던지 선생님들이 가까이 오지 못했습니다. 곧 바로 단군상의 얼굴을 곡괭이로 찍었습니다. 생각보다 단단하더군요.

단군상의 얼굴만 부쉈습니까?
잘 깨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선 얼굴만 부쉈습니다. 그러자 평소 알고 지내던 교감선생님이 “목사님 이제 그만 하시지요”라고 하시더군요. 교장선생님은 단군상 주변을 걸어 다니면서 야단법석이었습니다. 말리는데 계속하면 안 될 것 같고 안면만 부숴도 전체를 부순 것과 진배없다는 생각이 들어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면서 댓돌에 새겨진 글자는 아예 훼손하여 활용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면서 선생님들에게 “내가 쓰레기 치워주려 왔습니다. 빨리 경찰에 신고하세요”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경찰이 와서 잡아가지 않으면 거기서 몰매 맞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용인시기독교연합회 회장 목사님에게 전화했습니다. 상황을 이야기 하고 연합회 차원에서 대응할 것을 말했습니다. 경찰이 와서 연행해 가더군요. 파출소에 가서 간단하게 사실을 진술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단군상을 훼손한 사람에게는 강력 대처하도록 지시가 있었습니다. 수사관들이 뭘 알겠습니까? 내가 가르쳐주면서 수사를 했습니다. 바로 유치장에 구속될 수 있었는데 연락을 받은 용인경찰서 경목위원들이 경목실에 다 모여 있었기 때문에 수사관들이 긴장했습니다. 목사님들이 가끔 조사하는 내게 왔다 갔다 해서 함부로 하지 않더군요. 저녁 10시 넘어 집에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그 뒤가 문제였습니다.

단월드측에서는 어떻게 반응하던가요?
한문화온동연합회 측에서 전단지를 만들어가지고 우리 교회 주변에 뿌렸습니다. 식구들도 불안해했습니다. 교회 주변에다가 내가 한 일과 훼손된 단군상 사진을 찍어 그런 목사가 있는 교회는 가지 않아야 한다는 암시를 주는 전단지를 돌렸습니다. 신변의 위협을 느껴 식구들을 처가로 피신시켰습니다. 너무 시달리다 보니 참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또 전화가 와서 받으니 굶은 음성을 한 남성이 협박을 했습니다. “당신들이 노리를 것이 무엇이냐? 나와서 맞부딪쳐 끝장을 내자. 시간과 장소를 정하여 만나자(막가자는 식 언어로)라고 큰 소리 쳤습니다. 큰 소리를 치니까 협박 전화가 줄어들더군요. 전화번호도 다 바꿨습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그 사건을 종교적 대립구도로 보려 했습니다. 민족적 전통을 무시한다는 이야기도 했구요.
이해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깁니다. MBC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다가 수락했습니다. 그 당시에 아쉬웠던 것은 기독교가 단군상 문제를 대처하는 전략적 개념이 부족했었다는 점입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공공장소에 우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개념 이였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사회 도처에 깔린 것이 우상들인데 다 부수어야 하잖아요. 유독 단군상만 없애야 한다는 것은 논리상으로 맞지 않습니다. 사회적 개념으로 볼 때 기독교의 우상이니 단군상을 없애자고 하는 것은 명분과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단군과는 관계가 없으나 기독교를 싫어하는 반기독교세력들이 그들을 옹호하게된 것입니다. MBC PD도 그런 시각으로 접근하더군요. 제가 종교적 신념으로 단군상을 부쉈다는 것을 유도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공공장소와 국ㆍ공립학교에 세워진 가짜 단군상 조형물은 먼저 불법이며 역사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왜곡 된 것이며 종교적인 공작물이라는 것을 철거이유로 제시하였던 것입니다. 이승헌 집단의 단군상에 대한 역사적 왜곡과 그것을 주도하는 세력의 그릇된 상업적 문제들을 조목조목 지적했습니다. PD가 의도한 대로의 답이 나오지 않자 짜증을 냈습니다. 기독교 신앙 차원에서 우상을 깼다는 말을 듣고 싶었겠지만 그런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교과서에서 말하는 단군과 단월드가 말하는 단군의 차이점을 말하고 사회적인 폐단을 말해주었습니다. 나중에 PD가 화를 내면서 손해배상 청구를 하겠다며 가더군요. 시간만 낭비했다고 생각했나봅니다.

‘단군상 철거=우상철거’ 아니다?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교계에서도 제가 혈기나 영웅심리로 가짜 단군상을 철거하고 반대운동을 한다고 폅하합니다. MBC PD도 저한테 “기독교의 우상이니까 깬다”는 답을 듣고 싶었겠지요. 단군상 설립을 주도하는 대표가 1952년생인데 마치 광복운동을 한 것처럼 자신을 소개합니다. 말도 되지 않지요. 이런 문제들을 조목조목 따지고 단군상 훼손 문제를 기독교인의 감정이나 우상 파괴 문제로 접근하지 말고 법과 학문과 사회적으로 잘못된 것을 정부가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을 제기 했습니다.

단군상 철거 문제로 구속되기도 하셨지 않습니까? 그 일도 말씀해주시지요.
가짜 국조단군상을 훼손한 것인데, 학교 교장선생님이 고소를 했습니다. 공공건물 기물파손이라는 이유로 형사고발을 한 것입니다. 공공건물에는 들어가도 피해를 주지 않으면 문제가 없지만 손상을 주면 불법침범이 됩니다. 재물손괴죄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당시 사법부에서 단군상에 대한 재물로서의 가치를 500만원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법원에서는 8개월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500만원이면 3개월 정도의 실형을 줄 수 있는데 재판관이 지나치게 형을 언도했습니다.

구속 수감되었을 때 교회와 교계 반응은 어땠습니까?
2001년 5월 28일 법정 구속되었다가 2002년 1월 28일에 만기 출소 했습니다. 8개월 교도소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졸지에 전과자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은혜입니다. 교도소에서 40일 금식을 했습니다. 마음고생을 한 아내와 가족들에게 수많은 목사들의 따듯한 위로와 격려로 환난을 이기게 하여 주었습니다. 교인들은 기도만 할 뿐이었고 노회에서 전도사를 파송해서 예배인도를 하게해 주셨고 수많은 목사님들께서 찾아오셔서 위로의 말씀을 전해 주셨고 교도소에 면회를 와주셔서 저에게는 큰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후원을 많이 해 주었습니다. 교계 단체에서도 격려를 해주었구요. 전혀 일면식이 없던 분들도 면회를 와주고 했습니다.

유명해지려고 단군상을 부순 것도 아닌데 그런 일이 발생하니까 교도소에서 나온 뒤에 일부 사람들이 오해하더군요. 단군상 반대운동을 하니까 도와주세요 라는 말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사회적인 악이요, 기독교인으로서는 당연히 사회적인 악을 없애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일 감사한 것은 바른문화운동국민연합 이기영 집사를 만난 것입니다. 이기영 집사도 처음에는 나에 대한 입소문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서로의 진정성을 확인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 사분과 함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인 오해나 주변 사람들조차 호응해주지 않는 일인데 그만둘 생각은 하지 않으셨는지요?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지요. 교회에 단월드 측의 하수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오기도 했습니다. 교인을 가장해서 오는 것입니다. 내가 눈치 채고 다른 교회로 갈 것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왜 그만 두고 싶지 않겠습니까? 보따리를 몇 번 쌌습니다. 가족들이 힘들어 하는 게 너무 미안한 해서 자료 싸서 처박아 놓기를 여러 번 했습니다. 기도해 보면 하나님 마음을 알아서 견딜 수가 없어 다시 풀기를 반복했습니다. 사명이니까 하는 것이고 하나님 일이니까 식구들도 반대할 수 없는 처지라 그냥 견디는 것입니다.

딸과 아들이 작년과 재작년에 결혼을 했습니다. 주변에서나 집안 식구들도 그런 일을 하니까 혼사도 늦어지고 막힌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죽을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너희들은 결혼 상대자가 있으면 제일 첫째 내 이야기를 해라. 내가 전과자라고 밝혀라. 그것이 걸림돌이 된다면 결혼을 포기해라”고 했습니다. 자녀들이 순종하고 솔직하게 말했고, 며느리나 사위나 다들 그런 것을 수용하고 사돈도 수용하고 결혼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감사한 일이지요.

교회 성도들도 어려움을 겪으셨겠습니다. 담임 목사가 쉽지 않은 사역을 하기 때문에 이해하거나 공감하기가 어려울 텐데.
은총교회는 개척해서 6년 만에 장년 40명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단군상 문제가 터지고 나서 ‘감옥 갔다 와서 무슨 일을 한다고’라며 이웃들이 수군거리더군요. 교인들도 목회자 때문에 힘들었을 것입니다. 성도들 심방하는 것과 단군상 문제 겹칠 때는 심방하는 일을 뒤로 미루다보니 성도들을 돌보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미안하지요. 그래서 교회가 침체되어 있습니다. 솔직히 마음이 어렵지요. 양들을 돌보는 것이 목자의 일인데 그 마음을 제대로 돌보지 않을 때 목자의 심정도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도 성도들이 묵묵히 목사를 따라주니 감사할 뿐입니다.

가짜 국조단군상을 철거하는 것을 보니 마치 기드온의 바알 단의 훼파가 생각이 납니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단군상을 부순 일이나 철거운동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도 그 담대함이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초등학교 3학년 아들과 5학년 딸을 데리고 아내와 함께 1989. 12. 25일 한 밤중에 용인시장 상가2층 35평정도의 공간을 월세로 얻어 이사를 하여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리고 1년 후에 3층 50평 건물로 이사를 했습니다. 성도들이 늘어나면서 설교라는 것이 웅변이 아닌 성령님의 감동을 받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기도하기를 계획 했습니다. 1993년 7월부터 한국기독교순교자 기념관 건물 벽 밑 공간에 매일 철야 기도하도록 기념관 관리하시는 장로님에게 허락을 득하였습니다.

 

밤 12시를 기준하여 신앙고백으로 기도를 시작하여 새벽 4시에 주기도문으로 기도를 마치고 하산하여 5시에 새벽기도를 인도하고 6시경에 가정예배를 드리고 잠시휴식을 취하는 강행군의 기도를 실시하였습니다. 눈이 오고 추울 때에는 덮어쓴 담요위에 눈이 소복 히 쌓일 때도 있습니다. 내리막 눈길에 차가 미끄러져 쳐 박히는 위험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 기도의 힘 이였던 것 같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아니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닙니다. 단군상 자체는 조형물이지만 그 이면에는 영적세력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우상에 대해 힘이 없는 나무, 돌입니다, 그러나 그석은 어떤 영적인 의미를 두면 샤머니즘이 되고, 거기에 악한영이 역사하게 됩니다.

▲ 한 때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 처마 밑에서 밤에 와서 기도했다는 허태선 목사가 기도했던 자리에서 시험을 보이고 있다.


지금도 산기도를 하십니까?
그리고 매월 첮번째 주일예배를 모두 마치고 나면 저녁 9시가 넘습니다. 그때에 텐트와 취사도구를 준비해서 깊은 산골짝에 들어가 집중기도를 하고 금요일 새벽에 하산합니다. 산에서 기도 할 때는 밝은 낯에는 성경을 읽고 밤에는 기도합니다. 매번 같은 계곡을 가는 것 보다 또 다른 계곡을 옮겨가면서 기도하는 것이 더욱 깊은 영적인 세계의 악한 영들과의 싸움을 경험해보는 유익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깊은 산골짜기에 산주의 허락을 받아 움막을 설치하여 40일 금식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1999년까지 성경을 300독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는데 1년에 48번을 읽은 때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한지 만 7년 만에 하나님께서 가짜 단군상 철거로 인한 문제로 감옥을 보내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고 나의 상급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못합니다. 나이가 들다보니 체력이 떨어진 것 같습니다. 아침마다 냉수마찰 목욕을 했는데 그것도 올해는 못하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에는 세 달 정도 기도를 쉬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산기도도 예년 같이 못 하구요.

산에서 기도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삼사관학교 출신이라서 그렇게 겁이 없으셨습니까?
처음 가는 골짜기는 긴장이 돕니다. 그런데 같은 장소에 자꾸 기도하다보면 긴장이 사라집니다. 그러면 다른 계곡으로 갑니다. 이미 오래 기도한 곳은 어둠이 없습니다. 산기도를 하면서 기도에 대해 배운 것도 많이 있습니다. 배운 것이 아까워 기도캠프도 해보았습니다. 1999년에 너무 은혜를 받아 목사님들을 모시고 2박3일 기도훈련을 했습니다. 그 때 목사들이 80명 정도 왔습니다. 저녁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기도했는데 당시 삼분의 일이 짐을 싸가지고 내려가더군요. 이후 단군상 문제가 불거지면서 더 이상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 산 관리인의 허락을 받아 처소를 마련하고 기도한 산기도처. 눈이 쌓인 이 곳에 허 목사는 최근에는 너무 추워 작년 11월부터 올 2월까지 기도를 하지 못한다고 했다.


평소 성경은 어느 정도 읽으시는지요?
목사가 성경 많이 읽는 것이 무슨 자랑이겠습니까? 성경을 몇 번 읽었다고 헤아린 것은 1999년까지고, 그 때까지 300독을 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헤아리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몇 번 읽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한번은 일 년에 50독 하려고 계획을 하고 읽으니까 48회까지 읽을 수 있더군요. 나는 성경을 통독이라고 하지 않고 즐길 탐(耽)을 써서 탐독(耽讀)이라고 부릅니다. 즐겁게 읽어야지 노동이라고 생각하면 고생이잖아요. 교인들에게 몇 번 시도를 했습니다. 48시간(3박4일)이면 성경일독 합니다. 만약 단월드 반대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이 훈련을 개발해서 여기저기 가르쳤을 것입니다.

이승헌 집단의 가짜 국조단군상 철거운동이나 뇌훈련 반대운동을 하는 데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입니니까?
외부의 비난은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내부에서 일어나는 비난과 편견은 마음을 힘들게 합니다. 밖에 있는 적들과 싸울 때 써야 할 에너지가 내부의 아군들 때문에 소모되는 것은 낭비입니다. 단군상 문제는 문화적인 접근을 해서 기독교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무지한 생각입니다.

저의 가짜 단군상 철거운동이나 뇌훈련 반대운동을 혈기로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신앙의 근본 바탕이 있었기 때문에 한 것이고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표현이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감옥에 있을 때는 하나님께서 옆에 잠을 자주시는 것만 같았었습니다. 나를 위로해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참 감사했습니다. 가족들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왜 나서서 하겠습니까? 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일어나지만 하나님의 마음이 나를 용납하여주시지 않습니다.

 

선지자들의 삶에서 나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고 하나님에 대한 선종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단사상문제에 대한 사역을 감당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눈물을 흘린것을 모았다면 얼마나 되었을까?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 입니까? 선지자들의 삶을 통해서 위로를 받습니다.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 아닙니까?

뇌파교육이나 뇌훈련을 교육현장에서 어린아이들에게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부산에서는 이 문제로 법적 소송을 해서 최홍준 목사님(호산나교회 원로)을 비롯해서 6명이 피소되어 3년만에 검찰조사에서 협의 없으로 결정을 이끌어 냈습니다. 현재 이승헌 집단의 단군상 건립은 단순히 건국신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 그들의 집단인 선불교(민족종교)에서 신으로 섬기는 신상인 단군상을 “불광선인” 이름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그리고 공공장소에 단군상을 세우는 것이 어려워지자 단군종교의 경전인 천부경을 전국 공공장소에 세워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육계통에서 교사연수교육과 학교 교육에 뇌호흡, 뇌파진동들 뇌교육을 계속보급하고 있는데 이런 문제에 제동할 수 있는 곳은 기독교뿐입니다. 또 기독교 학부모들이구요. 공립학교에서 독버섯처럼 번져가는 뇌교육을 빨리 차단해야 합니다. 학부모들이 자기 자식을 망치지 않으려면 팔을 걷고 나서야 합니다. 정부나 교육관계자들도 정신을 차리고 막아야 합니다.ⓗ

 

예수가좋다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一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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