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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부부간의 순결한 성은 어떠해야 하는가?

참빛7 2013. 6. 14. 21:09

부부간의 순결한 성은 어떠해야 하는가?

 

 

 

시추에이션 코미디에서 심각한 드라마와 문학과 영화에 이르기까지,
남자와 여자들은 성적 경험을 좇는다.
우리의 스크린과 마음은 부부관계 밖에서 이루어지는 상상 가능한 모든 결합으로 넘쳐난다. 

성과 결혼에 대한 성경의 기준은 이것과는 날카롭게 대조되고 모순된다.
한 명의 배우자, 혼전순결, 충실과 같은 것들과 그 밖의 성경의 계명들이
자유와 쾌락과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기”에 물든 현대인들에게는
이상하고 고리타분하며 적절치 못해 보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불분명한 가치관과 얼룩진 원칙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억눌림과 혼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이상한 게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하나님의 규범과 지침을 따르려는 사람들조차
성의 의미와 행위에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부관계(결혼) 안에서 성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첫째, 우리는 성이 선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완벽하게 창조하셨으며 이들이 타락하기 전에 이렇게 선언하셨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하나님이 성을 만드셨고 의도적으로 인간을 성적 존재로 지으셨다. 

둘째, 성을 완전히 즐기고 이용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신
규범과 지침 안에서 성을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명을 누리며 서로를 누리기를 원하신다.
이것은 우리가 그분의 ‘성 매뉴얼’을 따를 때만 이루어질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단지 성뿐 아니라 모든 삶에 적용된다. 

셋째, 우리는 우리 문화에서 성이 과대평가 혹은 과소평가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성(sex)은 이 단어가 갖고 있는 그 어떤 의미로도 ‘궁극적인’ 게 아니다.
혼전순결을 지키지만 성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것을 기대하는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이들에게 결혼은 실망스러운 게 되어버리며, 이들은 자신과 배우자에 대해 의심을 갖게 된다.
비록 이렇게 말했지만 성은 결혼생활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덧붙이는 게 중요하다.
이러한 육체적 결합을 통해, 남편과 아내는 온전한 의미에서 서로를 발견하고 탐구하며 알 수 있다.
성은 자발적으로 배우자에게 순복하고 서로의 필요를 채우려 노력하면서 사랑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방법이다.

그리고 우리는 성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성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은 종족을 번식하며, 인간의 생명 곧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것을 잊거나 무시하고 쾌락에만 관심을 가질 때,
아기는 자기중심적인 생활방식의 방해로 여겨지게 된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의 성적 행위를 꾸짖고 교훈했다(고전 6,7장).
그의 논의의 핵심은 6장 13절이다.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
그리고 18,19절은 이렇게 말한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부부관계 안에서
성을 즐거운 것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한 방법으로,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방법으로 누려야 한다.

 

부부관계 안에서의 성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히 13:4). 
이것은 부부관계 안에서의 성은 선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말씀은 “뭐든지 괜찮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의 성적 욕구가 세상의 자극을 받으며 우리가 온갖 새로운 자세나 경험을 모방하려 할 때가
너무나 많다. 기억하라. 성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성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성적 기교에 대한 떠도는 소문을 따르지 말라.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사랑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고전 13:4,5). 

사랑은 우리가 누군가로 하여금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게 “만듦으로써”
우리가 “만들어내는” 그 무엇이 아니다.
사랑은 누군가의 가장 큰 유익을 마음에 두고 그에게 행하는 것이다. 

성을 무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이 무엇인가를 원할 때 상대방은 그게 무엇이든 간에 그를 벌하기 위해 그것을 움켜쥐고
주지 않을 수 있다. 성이 이러한 징벌이나 보복의 태도에 이용될 때가 많다.
사랑과 성을 결코 이런 목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고린도전서 13장과 예수님이 주는 것과 섬기는 것에 관해서 하신 모든 말씀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것은 우리가 서로간의 미움과 관계없이 상대에게 굴복하고
자신의 몸을 주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것은 먼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서로를 갈라놓는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는 뜻이다.
바울에 따르면, 성은 오직 기도와 금식의 목적을 위해서만 억제될 수 있으며
그때도 상호간의 동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전 7:5). 
성은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당신은 배우자가 어떻게 행동하거나 반응하느냐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 수 없다.
당신은 자신을 다스릴 수 있을 뿐이며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를 다스릴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배우자에게 당신의 육체적, 정서적 욕구에 따르라고(또는 성경구절들을 인용해가면서)
강요하지 말라. 다시 말하지만, 사랑이 열쇠이다.
성적 전희는 침실에 들어가기 오래전에 시작된다. 두 사람이 낮 동안에 서로를 어떻게 대하느냐는
밤에 서로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배우자가 이 부분에서 정말 문제가 있다면 서로 합심하여 기도하라.
당신은 이 분야에서 훈련받은 크리스천 치료사와 상담할 수 있다.

성이란 우리가 부부관계 안에서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방향으로,
그분의 인도 아래 즐겨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들을 기억하라.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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