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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렇게 회개하라 (사 1:16-20)

참빛7 2013. 6. 3. 21:30

이렇게 회개하라 (사 1:16-20)


이 시간에 “이렇게 회개하라”는 제목입니다. 죄인이 해야 할 가장 시급한 것은 회개입니다. 회개보다 시급한 것은 없습니다. 나이 많은 랍비가 사람들에게 "죽기 전에 회개하라"고 말하곤 했답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랍비여, 우리는 우리가 죽는 날을 알지 못합니다." 그 때 랍비는 힘주어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회개하라.”


고후6:2에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했습니다. 지금 회개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회개하는 것일까요? 먼저 성경에 나타난 회개라는 용어 의미부터 살펴보지요.


구약에 나타난 회개로 대표적인 단어가 (슈-브)인데 "돌이키다, 새롭게 하다 등"의 뜻입니다. 신약에는 (메타노이아)라는 용어가 쓰였는데 마음을 바꿈, 사고방식을 변화시킴. 돌아섬. 반전시킴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회개란 죄악에서 돌이킬 뿐 아니라 말씀 안에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죤 칼빈은 “우리의 생활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전향하는 것”이라 했고, 루이스 벌코프는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라고 정의”라고 했고, 박형룡박사는 “중생의 결과로 다가오는 하나님을 향한 전향”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회개란 온전한 믿음에 서기까지 계속해야 할 자기 갱신입니다.


구체적인 회개법이 본문에 나타나 있습니다.


1. 자신이 힘써야 합니다.


16절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스스로 회개하라고 말씀합니다. 회개란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하지만 사람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농부가 농사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불가능하지만 자신의 노력 없이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각자가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의 문을 노크하는데 마음의 문고리는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밖에 있으면 예수님이 따고 들어오시겠지만 안에 있어 우리가 열어주지 않으면 들어오지 못하십니다.


회개하자 했더니 “회개의 영을 주시지 않으면 회개할 수 없는데 왜 회개하라고 합니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입니다. 잘못 알면 알지 못한 것만 못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회개는 죄 지은 당사자가 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죄인이 주체가 되어 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약4:8-10절에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회개가 되지 않으면 회개의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러나 그 은혜를 구함도 우리가 해야 합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2. 버릴 것을 버리고 그칠 것은 그치는 것입니다.


16절 하 반절에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이처럼 회개란 버릴 것을 버리고 그칠 것을 그치고 떠날 것을 떠나야 합니다.


말로만 용서해 주세요. 하고 떠나지 않으면 그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후회만 하고 변화가 없다면 그것도 회개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팔았던 가룟 유다도 뉘우치는 건 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가 없었습니다.


어느 딸이 불신자와 연애를 했습니다. 아버지가 눈물로 말리는데도 딸은 듣지 않고 자기의 뜻대로 결혼하더니 교회도 다니지 않았습니다. 10년이 흘렀습니다. 하나님이 그 외아들을 치셨습니다. 병들어 죽었습니다. 그 딸은 "하나님께서 어찌 이러실 수 있습니까?" 회개하지 않고 도리어 원망을 합니다. 이렇게 정신 팔려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듯 떠나야 합니다.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세상 바로 왕은 우리를 놓아주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의 도우심을 간구하면 죄에서 떠나게 하시는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떠나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스라엘에 유월절을 무교절이라고도 부르는데 그 날이 오면 누룩을 제거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교절이 되면 치우고 쓸고 닦아 누룩을 없이 했습니다. 그릇 창고 방 마당 어느 곳에든지 누룩이 존재하지 않아야 합니다. 누룩은 죄의 예표입니다. 죄를 그렇게 청소하라는 말입니다.


찰스 피니는 “아무리 큰 죄라도 회개하기만 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진정한 회개는 무엇인가? 회개는 단순히 지은 죄를 애통해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죄를 거부하는 것이다. 회개는 마음에서부터 죄를 포기하고 버리는 것이다. 회개는 죄를 배격하는 것이다. 회개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죄를 떠나야 할까요? 살전5:22에서는 말씀합니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죄에 대한 향수와 자랑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히12:4에서는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범죄하지 않으려고 핍박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5:29-30) 하셨습니다. 그만큼 죄를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죄가 두려운 것은 하나님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죄짓는 일에 담대한 사람입니다.


3. 예수님의 마음으로 행해는 것입니다.


17절의 말씀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죄를 버리는 것은 반절의 회개입니다. 나머지 반절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삭개오의 진정한 회개는 자기 소유를 들여 예수님의 뜻대로 하겠다는데 있었습니다. 여리고로 내려가던 강도 만난 자의 이웃과 같이 숨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 세계 여러 나라에 착한 사마리아법이 만들어져서 도와야 할 상황을 보고도 방치하면 방치한 자를 처벌하고 있지만 이것은 법 이전에 신앙 안에서 이미 행해져야 합니다.


요일3:17에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 아버지의 마음을 목표로 회개해야 합니다.


어거스틴는 방탕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 말씀에 접하여 깊이 회개한 뒤에 죄의 욕망이 가끔 일어나면 그럴 때마다 팔을 물어뜯으면서 자신의 죄를 회개했다고 합니다. 마틴 루터도 자기의 죄를 깨닫고 졸도하기까지 하는 심각한 회개를 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위대한 것은 새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셨습니다. 회개하는 곳에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계22:14에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누구나 하나님께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 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회개한 만큼 변화된 만큼 천국 안에 들어와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회개입니다. 한 사람의 회개는 하늘에서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보다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그만큼 회개가 복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물들지 말고 계속적인 회개로서 패역한 세대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의 온전한 기쁨이 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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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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