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때 묻고 찢어진 일기장에는…”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
그런데 그에게는 어려서부터 갖고 있는 큰 상처가 있다. 호적상 그에게는 엄마가 없다. 하지만 실제로는 두 분의 엄마가 계신다. 그가 한 살 되던 무렵부터 키워주셨고 지금도 함께 살고 있는 엄마가 있다. 또 다른 엄마는 호적에는 올라 있지 않지만 그를 낳아준 엄마이다.
그가 두 명의 엄마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어린 그가 받아들이기는 너무 힘든 일이었다.
지긋지긋하게 가난한 살림형편이다. 물론 남들이 다 다니는 학원이나 과외공부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새 옷을 입고 뽐내는 친구들을 보면 괜히 신경질이 났다. 그래서 일부러 아이들에게 시비를 걸기도 했다.
결국 그는 학교와 또래 친구들에게서 문제 학생으로 낙인이 찍혔다. 친구들은 그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두려워서 피하기도 했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그런 세상을 향해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생존방식은 고슴도치처럼 날카롭게 가시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는 아이들과 거침없이 싸웠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진한 화장을 하고 야한 옷을 입었다. 그 아이는 그렇게 멍들어 갔고, 점점 더 자신을 닫아 버렸다.
어느 추운 겨울, 그는 가출했다. 엄마는 그 추운 날 얇은 가을 점퍼를 입고 딸을 찾으러 온 동네를 헤매고 다녔다. 사람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물었다. “왜 옷을 그리 입고 다니시냐?” 그러자 엄마는 대답했다. “아이가 집을 나가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어미라는 사람이 어떻게 뜨뜻한 방에서 다리 뻗고 잘 수 있으며 두꺼운 코트를 입을 수 있겠어요?”
수소문 끝에 엄마는 친구 집을 전전하던 딸을 찾아냈다. 돈 한 푼 없이 가출했던 딸은 자신이 지니고 있던 모든 것들을 다 팔아버렸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학교를 다니기 위해 책가방부터 필통까지 모두 다시 사야만 했다. 엄마는 다른 식구들의 눈치를 보면서 하나씩 하나씩 장만해주었다.
엄마는 벌써 연세가 환갑이 훌쩍 넘은 할머니다. 허리를 앓고 있었다. 게다가 관절염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 그래도 파트타임으로 식당일을 했다. 아이를 돌봐주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딸이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마련해주었다.
딸이 갖고 싶어 하던 브랜드 옷이 있었다. 그런데 그 옷이 꽤 비싸기 때문에 살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나 딸은 엄마에게 화를 내면서 소리질러댔다. “옷을 사주지 않으면 또 집을 나가버릴 거야!”
엄마는 어찌할 수 없는 형편이었기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묵묵히 빨래한 옷을 개며 눈물만 흘릴 뿐이다. 소리를 지르면서 씩씩거리던 딸의 눈이 무심결에 옷을 개는 엄마의 손길 끝에 머물렀다. 너덜너덜한 러닝셔츠, 고무줄 부분이 다 삭아 얇아진 속옷. 순간 딸은 옷을 개던 엄마의 손을 제치고 낡은 속옷더미를 집어던졌다. 부끄럽고 죄송스런 마음에 눈물이 솟구쳤다. 딸은 엄마를 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엄마도 자신을 결국 외면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자신을 낳은 엄마가 자신을 버렸듯이. 딸은 눈물을 감추지 못한 채 엄마에게 말했다. “그게 가장 두려웠다”고. 그런데 “정말 엄마를 사랑한다”고. 그리고 “너무너무 고맙다”고.
그 뒤부터 딸은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해 열심히 자신의 재능을 펼치고 있다. 교회 학생회 행사가 있을 때마다 워십곡을 만들어 친구들과 함께 멋진 무대를 장식한다.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의 손을 잡아주셨다. 엄마의 한량없는 사랑이 그를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자식이 어떻게 부모의 깊은 속을 헤아릴 수 있으랴!
5월 5일 토요일이었다. 어머님께서 아내에게 전화를 하셨다.
“야야, 돈 조금 보낼 테니까 아이들하고 맛있는 것 좀 사 먹어라!”
아내는 ‘그렇게 하지 마시라’고 거절을 했다. 그러나 어머님은 기어코 통장에 돈을 입금하셨다. 30만원씩이나. 무슨 돈이 있다고.
7일 월요일. 오전에 학교에서 하는 강의를 마쳤다. 본가를 가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내일 대심방이 있기 때문에. 나는 미안한 마음에 어머님께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전화를 드렸다. 홀로 계신 연로한 어머님을 언제 다시 뵐지 기약도 할 수 없는데…
결국 저녁쯤 아내와 함께 이것저것 챙겨서 난곡에 계시는 장인 장모님을 뵈러갔다. 아내에게 물으니 용돈을 10만원만 챙겼단다. “10만원 더 넣지~” 그러나 아내는 ‘다른 것을 많이 챙겼으니 됐다’고 했다. 처가댁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8일 화요일. 대심방을 하는 중에 다시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정말 죄송해요.”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서 아내에게 물었다. “어머님께 용돈은 보내드렸지?” 사실 나는 경제권을 모두 아내에게 맡기고 산다. 가정의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모른다. 본가이든, 처가이든 선물이나 용돈을 챙기는 것은 아내 몫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안한 마음에 아내에게 물었다.
이게 웬일인가? 아내는 미안한 마음으로 말했다. “어제 통장에서 10만원을 인출하고 나니 남은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보내드리지 못했어요~” 남편에게 얼마나 무안했을까? 시어머니에게 얼마나 미안했을까? 나는 아내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미 마이너스 통장 한도액을 넘었다. 더 뺄 방법도 없다. 친정 가는데 빈손으로 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남편이 ‘10만원을 더 챙기자’고 했을 때 ‘그만 됐다’고 했던 게다.
나는 어머님께 죄인된 심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또 다시 전화를 드릴 용기도 없었다. 자식들을 위해서는 빚을 내더라도 과외비를 지출하지 않던가? 그러면서도 1년에 한번 뿐인 홀로 계신 어머님께는 단돈 몇 푼도 붙여드리지 못한 불효자가 되었다. 그런데도 어머님이 보내주신 30만원은 받아들었으니… 그래서 불효자는 울고 있다.
나와 같은 불효자의 모습을 가진 사람이 여기 또 한 사람 있다. 82세의 노인이 52세 된 아들과 거실에 마주 앉아 있었다. 그 때 우연히 까마귀 한 마리가 창가의 나무에 날아와 앉았다. 노인이 아들에게 물었다. “저게 뭐냐?”
아들은 다정하게 말했다. “까마귀에요. 아버지.” 그런데 아버지는 조금 후에 다시 물었다. “저게 뭐냐?” 아들은 다시 대답했다. “까마귀라니까요.” 노인은 조금 뒤에 또 다시 물었다. 세 번째였다. “저게 뭐냐?” 아들은 짜증이 났다. “글쎄 까마귀라고요.” 아버지가 느낄 만큼 아들의 음성에는 분명하게 짜증이 섞여있었다. 그런데 조금 뒤 아버지는 다시 물었다. 네 번째였다. “저게 뭐냐?” 아들은 그만 화가 나서 큰 소리로 외쳤다. “까마귀, 까마귀라고요. 그 말도 이해가 안 돼요? 왜 자꾸만 같은 질문을 반복하세요?”
잠시 후, 아버지는 방에 들어가 때가 묻고, 찢어진 일기장을 들고 나왔다. 그 일기장을 펴서 아들에게 주며 말했다. ‘네가 읽어 보거라.’ 아들은 일기장을 읽었다. 거기엔 자기가 세 살짜리 애기였을 때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었다.
“오늘은 까마귀 한 마리가 창가에 날아와 앉았다. 어린 아들은 ‘저게 뭐야?’라고 물었다. 나는 ‘까마귀’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런데 아들은 연거푸 23번을 똑같이 물었다. 귀여운 아들을 안아주며 끝까지 다정하게 대답해주었다. 까마귀라고 똑같은 대답을 23번을 하면서도 즐거웠다.”
4번의 반복이 지겹다고 얼굴을 붉히며 아버지에게 대드는 아들. 23번의 반복되는 철부지 아들의 질문 앞에서 사랑스럽고 다정스럽게 웃으며 대답하시던 아버지. 이게 바로 내 모습이 아니던가? 부끄럽게도. 죄송하게도. 우리 어머님과 대조되는 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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