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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순교의 피가 흐르는 나라 일본

참빛7 2011. 7. 15. 08:21

 순교의 피가 흐르는 나라 일본

 

일본은 1549년 예수회 소속인 프란시스코 자비에르 선교사에(1506-1552) 의해 그리스도교를 받아드렸다. 이것은 마틴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지 약 32년후에 일이다 (1517).

일본 최초의 선교사 프란치스코 자비에르는 1549 815일 일본에 도착하여 그는 생명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담대히 복음을 전했다. 그의 열심의 덕분으로 크리스천 영주(城主、오늘날로 말하면 도지사)가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규슈의 오오무라 영주인 스미타다였다

 오오무라 영주의 영향으로인해 오오무라성의 6만명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였고, 이로인해 일본은 복음이 들어온지 불과 50년 만에 일본 전체 인구의 5%에 달하는 70여만명의 신자라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그 당시의 일본의 인구는 지금의 10분의 1정도인 1500만명 정도였다고 하니, 엄청난 부흥이라고 아니할수없다.

이런 면을 볼 때 일본이 부흥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부흥의 잠재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나라라는 것을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이 내가 일본선교가 된다고 믿는것중의 또하나인것이다.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엄청난 복음의 확장이었다고 볼수 있다.

그 당시 일본에서 정권을 잡고 있었던 사람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임진왜란의 주인공 풍신수길(豊臣秀吉)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나고야에서 바브지스터 신부를 비롯하여 다른 많은 성도들을 만나게 되는데, 만남이 계기가 되어 기독교에 호감을 갖게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몇달후에 교토의 묘만지터의 광대한 토지를 신부하게 희사하게 된다. 바브지스터 신부는 기부 받은 땅에 수도원을 세우고, 교회와 서양식 병원을 세우기도 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키리스탄(크리스천)들의 선교를 묵인하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어느날 정세를 오판한 나머지 서구열강의 침략을 두려워했고, 이를 견제하기 위해서 키리스탄에 대한 강경정책을 행하기 시작했다. 결국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87년 키리스탄(크리스천) 선교사 추방령을 발표하게 되었고 그후로부터 엄청나게 크리스천에 대한 수난과 박해를 가하기시작했다. 

(1549815일 큐슈의 가고시마에 일행 7명과 상륙한 자비에르 선교사는 가고시마, 나가사키등 큐슈지방에서 먼저 복음을 전하다가 1551 113일 천황을 만나서 선교의 허가를 받기위하여 교토에 도착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오닌의 난으로 인해 피폐해진 교토의 무력한 천황을 보고 단 11일 만에 교토을 떠나서 야마구치로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된다.

이렇게 자비에르선교사가 복음을 전한이래 일본은 특별히 다이묘, 즉 높은 지위에 있는 고관들이 많이 예수를 믿고 개종을 하게 되었고 오다 노무나가때에 이르러서는  복음이 자유스럽게 전파되고 교회 병원등에서 많은 크리스천들이 활동을 하게 된다.

이때부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박해가 시작됐다 ) 이와같이 프란시스코 자비에르가 복음전파를 시작한 이래 급속하게 퍼졌던 키리시탄 신앙인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구가와 이에야시 막부의 기독교 금지령에 의해서 추방, 순교, 배교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이렇게 철저한 탄압과 박해 속에서 키리시탄은 여러종류의 모습으로 나뉘게 되었다.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한 사람이 30만명에 달했는데, 이들이 순교당한 방법은 말로 형용할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이들이 순교당한 방법은 너무나 참혹했다. 

후미에라는 방법이 있었는데, 이것은 매년 한 번 예수의 그림이나 그 형상을 내놓고 그것을 밟으면 살려주고, 그것을 밟지 않으면 기독교인이라고 인정해서 처형하는 방법이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제도로 인해서 순교를 당했다고 한다. 이 처형방법이 기독교가 해금이 될때까지 약 300년간이나 지속적으로 행해졌다고 하니 정말 그 끔찍함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후미에를 거부한 기독교인들에게는 무서운 고문이 가해졌으며, 그렇게 해도 신앙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에게까지 무지막지한 고통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일본의 작가 엔도슈사쿠의 침묵이라는 소설에는 후미에의 상황이나 잔혹한 고문의 모습이 실제적으로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실제로 그당시에 너무나 고문과 박해를 견디기어려워서 믿음을 버리고 불교도가 된 선교사도 있다고 한다.

오인조제도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농민 다섯 가정이 한 조가 되게 해서 세금이나 범죄등의 감시와 기독교인을 적발하기위한 목적으로 제정한 제도였다. 그리고 물고문, 바닷물이 들어오는 곳에 메어다는 일, 멍석에 말아 바다에 빠뜨려 죽이는 일등 아주 잔인한 방법을 사용했다.

1614년에는 믿음을 지키다가 필리핀 마닐라 등 국외로 추방당한 사람들이 약 350여명이나 되었는데, 이들은 주로 고관들과 유명한 사람들로서 이들이 순교자로서 추앙받는것을 허락하지 않으려고 처형대신 국외추방의 방법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런 참혹하고 가혹한 고문과 박해를 도쿠가와 이에야시 정권하에 300년간을 지속했다는것이다. 이로인해서 오늘날의 일본인의 성격인 혼네와 다데마에 ( 속마음과 겉마음이 다른 것 )가 만들어 졌다고 하는 말이 있다. 원래는 쾌활했던 일본인의 성격이 오랜 박해속에서 이렇게 되었다는것이다.

이런 과정가운데 고통을 이기지 못해 배교하는 사람도 생기게 되었고, 배교는 하지 않았지만, 신앙이 변질된 사람들이 생기게 되었다.  이들을 카구레 키리스탄 (  숨어서 믿은 그리스도인 )이라고 한다.  또한 완전히 신앙을 버린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박해와 핍박가운데서 신앙을 지킨다는 것은 그렇그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을것이다. 고통참고 인내하고 고통을 끝까지 견딜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을것이다. 흔들리지않은 굳건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만이 견딜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일제치하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시절 수많은 사람들이 신사참배에 굴복한 것만 보다도 쉽게 알수 있지 않는가?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은 박해가 심해지자 불교에 자기의 이름을 올리고 불교신앙인처럼 위장하고 신앙을 이어갔다고 한다. 이들은 철저히 겉과 속을 다르게 위장하며 심지어 자기 가족들에게도 자기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을 숨기면서 겉과 속이 다른 그런 이중적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 (본네와 다데마에 ), 기독교도 아니고 불교도 아니고 신도도 아닌 그런 상태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었다.

큐슈지방에는 지금도 그들의 후손들이 있다고 한다. 통상 가구레키리스탄이란 바로 이런 사람을 말한다.  물론 신앙을 지키기위해서 깊은 산속 아무도 없는곳에 피신하여 신앙을 지킨 사람도 있었으나, 그들은 결국 막부의 끈질긴 수색작업으로 순교 추방 또는 배교의 길을 걸어가야 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보면 혹독한 탄압은 오히려 신자들의 신앙을 더 굳게 굳히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은 세계 기독교 역사에 가장 많은 순교자가 있는 나라이다. 

300년만에 30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신앙을 지키다가 갖가지 잔인한 모양으로 순교를 당한 역사가 교회 역사상 또 어느나라에서 찾아볼수 있는가? 

세계 어느 나라가 기독교 신앙을 거부하면서 이토록 발전한 나라가 있는가? 

일본이 유일하지 않은가? 

일본은 우리가 알고 있는것과는 달리 순교의 피위에 세워진 나라이다. 순교가 피가 지금도 흐르고 있는 나라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믿지않는 나라가 부강한 나라가 없는데,

 ! 일본은 유독 이토록 부강하단 말인가?

의문이 많았었는데, 이 사실을 알고 그 해답을 찾았다. 일본 기독교인처럼 이렇게 신앙을 위해서 목숨을 불사한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할 정도이다. 여기서 일본 최초의 순교자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우리나라의 임진왜란이 일어난것은 1592-1598년 사이인데, 정권을 잡은 당시의 실력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국내적인 정세의 혼란함을 임진왜란을 통해서 국외적으로 해결하지 않았는가? 추측해 보게 된다.

이미 말씀드린바와 같이 159725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키리스탄 처형 명령을 내린다. 이 명령에 의해서 교토와 오사카 등지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신자가운데 24명이 체포된다. 이들은 모두 교토와 오사카 등지에서 신실하게 신앙을 지키던 사람들이었다.

이 가운데는 12, 13, 14세 등 어린 소년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예수님을 믿는 백성들에게 본보기를 보이려고 이들의 귀를 자르도록 명령했고, 24명은 한쪽 귀가 잘려 곪아가면서 아픔을 견뎌야 했다.

이들은 드디어 교토에서 나가사키까지 약800키로라는 긴 거리를 포승에 묶인 채로 끌려갔는데 부르튼 발로 엄청나게 고통스러웠지만 한번도 원망하지 않고 천사와 같은 얼굴로 기뻐했다고 전해진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들을 나가사키까지 끌고 가서 처형하도록 한것은 전 도시가 복음을 받아들여 6만명의 크리스천이 사는 나가사키 지역에서 참상을 보여주고자 한것 이었다고한다.

처음에 교토에서 포승에 묶여서 끌려간사람은 24명이었는데, 나중에 24명을 호송하던 2명이 이들의 모습을 보고 크게 감동을 받아 함께 순교할 것을 자청해서 순교자는 모두 26인이 되었다고 한다.

1597 25일 아침 나가사키 니시자카 언덕에 세워진 26개의 십자가를 보자 26인은 기쁨으로 달려가 자기가 달려 죽을 십자가를 끌어안았고 4천여명이 보는 가운데 십자가에 매달린채 창으로 가슴을 찔려 피를 흘리면서도 숨이 끊어질때까지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며 시편을 외웠다고 전해진다.

가장 어린 12살의 루도비코에게 키리스토교를 버리면 살려주겠다고 제안했으나, 루도비코는 잠시뿐인 인생과 영원한 생명을 바꾸는 것은 의미가 없다 라고 거절했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지 않는가? 인간의 이성으로, 힘으로 가능한 일이었겠는가? 놀라운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었을것이다.

순교자들의 유체는 그 후 80일간 십자가에 달린채 방치되었다고 한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전국적인 박해는 계속되었다고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이 끝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잡자 그는 더욱 기독교를 박해하기 시작했다고한다.

이런 엄청난 탄압속에서도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그것은 1637년의 시마바라(島原 )의 난이다. 큐슈의 시마바라라고 하는 곳에서 사무라이와 농민을 중심으로 한 37천명의 신자들이 모여서 막부( 그당시의 정부군)에 저항한 사건이다.

아마쿠사시로라는 당시 16세의 소년을 중심으로 해서 12만명의 도쿠가와 이에야시 막부의 군대와 1년 이상 싸워 전원 순교당한 참혹한 사건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도쿠가와 이에야시는 전국적인 키리스탄 금교령을 발표하고 밀고자에는 포상금을 지급하며 키리스탄 적발을 강화했다고한다.

선교사를 신고한 자에게는 은화500 ( 3억엔), 수도사는 은화 300냥을 포상금으로 걸었고, 그리고 5호연좌가구를 만들어 다섯 가정을 한데 묶어 이 중에 한명이라도 예수 믿는 사람이 나오면 다섯 가정 식구들을 모두 죽이고 해당 마을 촌장까지 처형했다고 한다.

일본 최초의 26명의 순교가 일어난지 22년후에 1619106일 교토의 대순교가 있었다. 일명 원화대순교라는 사건이다. 지금도 그 순교지가 비석과 함께 보존되고 있는데, 일전에 교회성도들과 함께 그 현장을 방문하고 순교의 정신을 그려봤던적이 있다.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한번쯤은 방문해보면 좋은 장소라고 생각한다. 이 장소에서 가족단위로 십자가에 달려서, 밑에서 화형으로 처형한 사건이다. 이때 모두 52명이 순교했다고 한다. 

이중 11명이 어린이라고한다. 1622년 나가사키에서는 같은 방법으로 56명이 처형당했고, 1623년에도 같은 방법으로 도쿄에서 50명이 처형당했다고한다.

일본은 이런 순교의 피가 밑거름이 되고 있는 나라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일본이 팔백만의 잡신이 우글거리는 나라라고 해도, 나는 일본이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것이다.

일본선교 된다고 믿는것이다. 나는 일본인도 복음을 받아드릴수 있는 잠재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몇 년전 일본의 후지TV NHK방송국에서 일본인들이 만약 종교를 선택한다면? 하는 타이틀로 앙케이트 조사를 한 결과가 있는데, 일본인들의 60-70%가 기독교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젊은이들은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TV CM중에 이런 광고가 있었다.

早く、教会で結婚したい!

빨리 교회에서 결혼하고 싶다 !

 

물론 그 결혼식장은 예배를 드리는 장소가 아닌, 전문적인 결혼 예식장이지만, 아무튼 교회의 모양을 한 곳을 선호한다는것 자체에 나는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그리고 일본선교가 된다는 마음을 갖게하는 또 하나의 사실은, 크리스찬이 0.3% 30만밖에 안된다고 하는 일본에서 매년 판매되는 성경책은 120만부나 된다고 하는 것이다. 무슨 의미인가? 교회는 다니지 않지만, 집에서 성경을 읽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긍정적인 의미아닌가?

일본의 순교역사에서 보는것처럼, 숨어서 성경을 보는사람, 교회는 아직 나오지않았지만 집에서 혼자서 믿고있는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기대가 된다.

1997년 처음으로 일본에 단기선교를 왔을 때 부르던 찬양처럼, 그날에 주의 영이 임하여  그렇다. 언젠가 모르지만 그날에 주의 영이, 성령이 임하시기만 하면 놀라운 부흥이 일어날것이다. 나는 이 기대를 항상 하면서 사역하고 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시간에 반드시 이루워질것을 믿는다.  이것은 막연한 기대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하실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 그리고 우리의 원하는 때에 무엇이든지 이루워지기를 바라지 않는가? 우리의 때보다 우리의 시간보다 더 좋은 시간, 더 좋은 때가 하나님의 시간이고 하나님의 때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런 소망을 가지고 일본선교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런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일본을 위해서 중보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나는 일본에서 교회를 개척하기전에 개인적으로 다음과 같은 비전선언문을 교회적으로 발표한 적이 있다.

1.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넘치는 예배를 드리는 교회

2.        모든 병든자를 치료하고 회복시키는 교회

3.        신령과 진정으로 영적인 찬양을 드리는 교회

4.        정치인, 연예인, 체육인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

5.        천황과 황실에 복음을 전하는 교회

6.        일본 전역에 7개의 교회를 세우는 교회

7.         중국, 캐나다, 유럽등 일본이 많이 사는곳에 복음을 전하는 교회    

우리 야마토 은혜교회(www.yamatograce.net)는 작지만, 은혜가 넘치는 교회이다.

아직은 일본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지, 정말 은혜가 넘치는 알찬 교회라고 스스로 자부한다.

 비전선언문에 등장한것처럼 예배에 기름부으심이 넘친다. 기도와 말씀에 기름부으심이 넘치는 것을 경험한다. 이것은 주님이 기름부으시기때문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이미 언급한대로 치유를 위해서 부단히 기도하고 믿음으로 선포하고 있다. 새로운 영적인 돌파가 곧 일어날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우리의 찬양에도 이미 언급한대로 기름부으심이 넘친다. 우리는 찬양을 통해서 지성소에 들어왔음을 감지할때가 아주 많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 시편100:4 )

 

우리가 잘 알고 있는것처럼 일본은 야구의 나라이다. 일본에 살면서 특별한 여가생활을 가질수없는 나에게 야구을 관전하는 것은 유일한 취미와 즐거움이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국민타자라고 불리우는 이승엽선수를 응원하는 야구는, 나에게 사역외에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나는 야구를 관전하면서, 나의 비전에 따라서 이승엽선수를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어떻게 하면 이런 유명한 스타급 선수를 전도할수 있을까?

 저런 선수가 예수님을 믿으며 그 영향력이 얼마나 클까?

어려운 일본선교에 큰 힘이 될텐데!

이렇게 고민하던 나는 우선 그를 위해서 기도하기로 했다. 나는 테레비를 보면서 이승엽선수만 나오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결정적인 찬스가 오면

주님! 이시간에 홈런하나만 주세요!

라고 기도했고, 그러면 정말 기적적으로 끝내기 홈런이라던가, 적시 안타를 치므로 말미암아 팀의 승리의 기여하기도 하곤 했다. 나는 계속적으로 그를위해서 간절히 기도했고, 그가 속해 있는 요리우리 자이언트팀의 주소를 알아내어 그에게 복음의 메시지를 담은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물론 유명 스타급 선수가 수많은 펜레터를 다 읽었겠는가? 하는 의문도 있지만,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그때그때 게임상황과 이승엽선수의 상태를 파악하면서, 상황에 겉맞는 메시지를 담아 편지를 보내곤했다. 특별히 그가 부상을 입어 고통스러워할때는 치유의 메시지와 함께, 더욱 간절히 기도하곤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어떤 답변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뿌린 씨는 언젠가 열매를 맺는다고 믿는다. 매스콤을 통해서 잘 알고 계시듯이, 이승엽선수는 2011년부터 요미우리 자이언트를 떠나 오릭스와 새로운 계약을 맺고 뛰게 되었다. 특히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던 박찬호 선수도 오릭스에 합류하게 되었다니, 금년에는 더 열심히 이들을 응원하면서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여러분들도 기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이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이 증거되도록 말이다. 이들에게 복음이 들어가고 오릭스가 2011년 일본시리즈에서우승하게 되고, 우승 수훈선수 인터뷰에 이승엽선수와 박찬호선수가 등장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린다는 멘트가 일본 전역에 방송으로 퍼져나가기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주시기 바란다.

그밖에도 나는 정치인들과 연예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전도가 될수있을까? 지금도 주님께 지혜을 구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에 일본 천황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http://www.yamatograce.net/

출처 : 우자매샬롬하우스
글쓴이 : 사랑과 순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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