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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강원/강릉] 이제야 봄빛~! 강릉 오죽헌(江陵 烏竹軒)

참빛7 2010. 4. 17. 10:07

늦은 4월, 이제야 봄빛을 발하다. 

강릉 시립박물관, 오죽헌

www.ojukheon.or.kr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 201  /  033-640-4460

 

4월이다.

예년보다 무려 20여일이나 늦은 봄빛의

오죽헌이다.

산수유와 개나리, 목련과 자두꽃, 그리고 매화와 오죽,

늦어진 그만큼, 오죽헌의 봄은 상쾌하다. 

 

오죽(烏竹)

화분과에 속하는 다년생 풀로 첫해에는 초록색이었다가 한 두해를 넘기면서 오죽의 빛으로 바뀐다.

 

현 유통되는 지폐속의 인물로 사임당 신씨와 율곡 이이다. 아들인 율곡선생의 5,000원권에 이어 어머니인 사임당 신씨도 50,000원권에 그려짐으로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모자모델이 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어쨋든 아들은 조선 성리학을 완성한 사상가요, 어머니는 우리나라의 매표적인 여성상임을 부정할 일은 없는 것이다.

 

강릉 오죽헌(江陵 烏竹軒),

잘 알려진 대로 사임당 신씨(師任堂 申氏, 1504~1551)와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가 태어난 집이다.

오죽헌의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조선시대의 문신이었던 경호 최치운(鏡湖 崔致雲, 1390~1440)이 지은 집으로, 형조참판을 지낸 아들 수헌 최응현(睡軒 崔應賢, 1428~1507)에게 상속 되었으며, 이를 둘째사위 이사온에게 물려주게 된다. 그 후, 이사온의 무남독녀인 용인이씨에게 상속이 되고, 용인 이씨도 아들 없이 딸 다섯을 두었는데 훗날 재산을 물려줄때, 둘째딸의 아들인 율곡에게는 조상의 제사를 받들라는 조건으로 서울 수진방 기와집과 전답을 주었으며, 넷째딸의 아들인 권처균에게는 묘소를 보살피라는 조건으로 강릉의 기와집과 전답을 주었으니, 훗날 강릉집 주위에 검은 대나무가 많은 것을 보고 자신의 호를 오죽헌(烏竹軒)이라 한것이 지금의 집 이름이 된다. 즉, 오죽헌은 사임당 신씨의 친정이자, 율곡선생의 외가집이 되는 것이다.

집안 내력의 효(孝)정신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사임당의 어머니인 용인이씨는 서울에 사는 신명화와 결혼을 한 후, 강릉의 친정 어머니인 최씨가 병이 나자 간호를 위해 강릉에 머물다가 사임당 신씨를 낳았으며, 서울의 이원수와 결혼 한 사임당 역시 강릉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가 율곡이이를 낳게 된것이다. 당시 율곡 선생의 본가는 경기도 파주로 6세까지 외갓집인 이곳 오죽헌에서 자랐다.

 

사임당 신씨가 율곡을 잉태한 곳은 강원도 봉평으로 백옥포리라는 곳이다.

판관대에서 '동해의 선녀가 옥동자를 안겨주는' 태몽을 꾸었으며, 이 후 홀 어머니를 모시려 오죽헌에 머물다가 '찬란이 빛나는 검은 용이 동해로부터 날아오는 꿈'을 꾼 후 율곡을 낳았다 하여 오죽헌을 몽룡실(夢龍室)로 불리기도 하며, 꿈 속의 용이 나타났다하여 율곡의 아명이 현룡(現龍)이 된다. 몽룡실은 조선 전기 민가의 별당에 해당하는 건물로 정면 3칸, 측면2칸의 평면 건물로 4칸의 대청과 2칸의 방과 마루로 구성이 되어 있다. 대청에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천정은 고미반자를  두고 삼면에 창호를 둘렀는데, 주심포 양식에서 이익공 양식으로 넘어가는 변천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의 건축자료의 중요성과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으로 1963년 보물 제165호로 지정 되었다.

 

나른한 휴일의 4월의 날과는 어울리지 않는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분다.

관리사무실을 지나 율곡동상을 지나면 오죽헌의 뜨락으로 들어가는 자경문(自警門)을 만난다. 자경문을 지나 율곡선생유적정화비의 옆으로 오죽헌으로 들어가는 계단이 나있다. 한껏 봄빛 내뿜는 담장위의 개나리를 만나보고 문을 들어서면 왼편으로는 천연기념물 제484호인 수령 600년의 율곡매가 만개하여 섰으며, 그 옆으로 율곡선생이 태어난 곳으로 보물 제165호인 오죽헌, 즉 몽룡실이다. 반대쪽으로는 율곡선생이 자랄때도 함께 있었다는 수령 600년생의 배롱나무가 선다. 정면으로 율곡선생의 사당인 문성사(文成祠)가 자리하고 그 뒤로 검은 대나무인 오죽이 둘러쳐 자라고 있다. 오죽헌의 뒤로 난 문을 나서면 바깥채와 안채이며, 그 뒤로 정조의 명으로 지어진 어제각(御製閣)이 자리한다.

율곡기념관을 시작으로 입지문을 나서면 향토민속관과 고분실, 선정비군을 지나 역사문화관까지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게 된다.

 

오죽헌의 뜨락은 한창 봄빛이다.

활짝 핀 개나리와 만개한 율곡매, 온통 횐빛인 목련과 자두나무의 이쁜 푸른빛이 있고, 산수유의 노란빛이 그렇다.

거기에 더하여 푸르름이 더한 오죽의 사각거림이 좋다. 안채의 뒤로 선 사철푸르른 나무들의 모습이 맑고 좋다. 오죽헌의 뜨락을 벗어나도 여전히 봄이다. 구사정과 구용정의 작은 동산은 푸르름으로 가득하기에 그렇다.

  

 

 

자경문(自警門)

6세까지 이곳에서 자란 율곡이 19세 되던해, 금강산을 다녀오면서 외할머니께 들려 남긴 글로 '스스로를 경계한다'는 뜻이 된다.

 

 

율곡매(栗谷梅)

수령 600년의 홍매로 천연기념물 제484호다. 오죽헌이 지어질 당시에 심겨진 매화로 본목은 고사하고 곁가지에서 자란 자목이다.

 

배롱나무

 

오죽헌의 뜨락

 

 

 

 

 

오죽헌(烏竹軒)

용의 꿈을 꾼 후에 율곡 선생이 태어난 곳으로 몽룡실(夢龍室)의 현판과 같이 붙어있다.

 

문성사(文成祠)

율곡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원래는 어제각이 있던 자리로 1975년 오죽헌 정화사업때 어제각을 서쪽으로 옮기고 문성사를 지었다.

문성(文成)이란, 인조임금이 율곡선생에게 내린 시호이며, 현판의 글씨는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다.

 

바깥채

 

 

 

바깥채의 주련은 추사 선생의 글씨를 판각해 놓은것이다.

 

 

 

어제각(御製閣)

정조임금의 명으로 1788년 지어진 건물이다.

 

 

 

안채와 노송

 

 

자두나무

 

 

 

 

 

 

 

 

 

by 박수동

 www.gilson.asia

 

출처 : 길손의 旅行自由
글쓴이 : 길손旅客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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