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 부흥사’ 이성봉목사의 삶과 신앙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한 후 14살 때 키작은 것을 이용해 반표로 기차를 탔던 것을 기억하고당시 중화역장에게 그때의 잘못을 고백하며 요금의 4배를 넣어서 붙였던 일이 있었다.
이성봉목사는 한국교회 부흥사(復興史)에서 아주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가 한국교회의 가장 심각한 시련기 곧 일제 말기의 고난과 해방, 6·25를 잇는 형극(荊棘)의 시대에 주로 활동한 점이 그 하나요, 교회부흥운동을 전국적으로 수행 하면서도 주로 작은 교회들, 그리고 특수 집단, 곧 군진(軍陳)이나 경찰서, 구치소 및 한센병원이나 양로원과 같은 곳을 중심으로 활동한 것이 그 다른 하나이다. 사 실 그는 한센병원 교회에는 전국 어디나 가보지 아니한 곳이 없었다.
이성봉목사는 스스로 그 가문과 그 집안에 대하여 솔직하게 그 어려웠던 일들과 아팠던 일들을 그대로 털어놓아 숨김이 하나도 없다.
그들은 평양 근처의 중화(中和) 에 이사하고, 그리고 거기서 40리(里 -약 1,600 킬로 메타) 떨어져 있는 평양의 선 교리 감리교회에 주일이면 새벽부터 걸어서 찾아가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곤 하였다.
주일이면 우리 어머니는 닭 울기 전에 일어나서 새벽조반을 지어 우리를 먹이고, 동생은 업고 나는 걸어서 혹은 아버지의 등에 업히기도 하며 그 머나먼 40 리 길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빠짐없이 교회에 출석하였던 것이다.
그는 어머니의 간곡한 권고와 교육으로 기도 생활에 몸을 던지고 아울러 성경 읽기에 전심하여 여섯 살의 나이에 신약성서 일독(一讀)의 기록을 세운다. 7세 때 에는 교회에서 공중 기도도 하고, 성탄절 같은 때에는 독창이나 연설도 하였다고 한다.
그의 복음의 핵심은 완전과 성결의 결백이 아니었다. 죄 없이 맑은 것, 그것이 그의 관심이 아니었다 진실, 그 회개의 자세가 중요하였다. 그의 한국교회 사상의 특이하교도 고귀한 공헌이 바로 여기 있었다. 그는 죄의 회개의 축복과 기독교성을 대서특필 계속 반복한다. 심지어 죄 없음을 외치지 아니한다. 죄의 참된 회개, 그것을 그는 일관되게 외치다가 간 것이다. 회개가 천국 가는 길인 것이다.
죄 지은 사람이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지 못한 사람이 가는 것입 니다.
이성봉목사의 모친은 김익두(金益斗) 목사와의 인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 천(信川)에서 목회하던 김익두 목사의 청빙으로 그 곳 경신소학교의 교원으로 가서 3년 가량 교편을 잡았던 것으로, 사뭇 지적(知的)이고도 신실한 여자였던 것으로 믿 어진다. 이성봉목사 역시 그 학교를 1914년에 졸업한 것으로 되어 있다. 당시 그는 몹시 몸이 약하였고 폐지스토마오 고생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때 김익두목사와의 신앙적 인연이 굳혀진 것이다. 김익두목사는 대단한 설교 가로 이성봉목사가 어린 나이인데도 그와 같은 설교가가 되었으면 하는 꿈을 가지 게 한 분이었다. 한국교회는 당시 김익두목사의 부흥운동에 다들 크게 감동을 받고 있었는데, 김익두목사는 실로 한국교회의 세기적 발전을 실현시킨 놀라운 성령 역 사의 부흥 목사였다. 우리는 이런 의미에서 이성봉목사에게서 그 부흥운동의 골격 과 메시지가 한국교회 전통을 이룬 김익두목사의 부흥운동과 상당한 유사점이 있다 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그 집의 가난은 계속되었다. 그것은 실로 형언하기 힘든 것이었는데 한국 인구 거반이 반영구적인 기아상태에서 헤매던 날의 일이었다. 당시 한국의 인구 구도는 농민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다만 21%만이 자작농이었다. 하지만 가난은 그 자신의 것이었다.
나는 자살하려는 결심까지 가지고 죽으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모진 목숨이라 죽지 못하고 다시 살아나 할 수 없이 산곡에 틀어 박혀 일을 하며, 나무를 해서 30리 되는 평양에 가져다가 팔기도 하고 실과를 달구지에 싣고 밤새워 평양에 들어가 팔기도 하였습니다. 점심을 굶고 저녁 굶기는 일쑤였습니다. 실과 판 동 으로 좁쌀을 사 가지고 와서 죽을 쑤어 먹는, 말할 수 없이 가난한 생활을 하였 던 것입니다.
한데 그의 나이 스물 한 살에 엄청난 변화가 있게 된다. 1920년 6월 24일의 일이 다. 주일날인데도 평양에 가서 장사한다고 실과를 따 가지고 간 때의 일이다. 그 날 밤 갑자기 오른쪽 넓적 다리가 쑤시기 시작하고 그것이 악화되기 시작하여 결국 3 년간을 고생하게 된다. 없는 살림에 논밭 다 팔게 되고 죽음의 공포가 무섭게 그에 게 닥쳐 들었다.
하나님 한번만 살려 주십시오. 이제야 깨달았나이다. 한번만 살려 주시면 이 몸을 주께 마치고 이 사실을 모르는 불쌍한 인간들에게, 또한 나의 뒤로 오는 후 배 청년들에게, 이것을 증거하겠나이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과 섭리를 전하겠 나이다. 예수를 증거하겠나이다.
마침 어린 두 딸은 저희들끼리 배급 쌀로 죽을 끓여 놓고 찬바람이 휭휭 도는 냉방에 앉아서 서 떠먹고 있었습니다. … 아버지는 만주교회에 집회 약속을 했으 니 불가불 가야 되겠다 하고, 차마 일어서지 못할 사정을 이기고 벌떡 일어섰습 니다. 차시간에 데려고 바쁜 걸음을 재촉하다가 뒤돌아보니 아이들이 아비를 전 송한다고 추운 겨울날에도 불구하고 따라나섰습니다.
뒤축이 다 떨어진 운동화를 끌고 양말은 여기저기 구멍이 나서 붉은 살이 나 오고, 털 자 하나 쓰지 못하고 떨어진 수건으로 귀를 싸매고 따라온 보습을 볼 때에 마음이 동요되었으나 다시 결심하고 기차에 올랐습니다. 기차가 떠날 때까 지 가라고 하여도 돌아가지 않고 떠나는 아비를 전송하려고 떨고 서 있는 어린 딸들을 보니 자연히 흐르는 눈물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이 성봉 목사는 계속 울고 있었다고 한다.
황해도 송화교회에서 설교할 때에 갑자기 온 몸에 고열이 나면서 운신 을 못해 강단 위에 쓸어져 앉고 한 시간 반을 설교한 일이 있는데, 그 때 그는 그 의 유명한 말 곧 "입으로 설교 못하면 죽음으로"라는 고백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 남해교회에서 설교하다가 맹장염으로 고통을 당해 설교를 "결사적"으로 계 속한 일도 있었다. 그런 일들이 그에게는 비일비재하여서 들것에 실려 누워서 이 교회에서 저 지방으로 가는 일이 여러 차례 있었고, 걷지 못해 사람들의 어깨에 몸을 기대고 걸어가 주의 말씀을 외친 일이 허다하였다.
이러다가 나 죽으면 하나님 손해 나지 나 손해 나겠습니까.
그의 이 유머 섞인 장담에 그의 하나님 주신 사명에 대한 확고부동한 신앙이 깊 이 뿌리 박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일본, 만주, 한국의 전역, 농촌, 도시, 산촌, 섬, 여러 곳을 다닐 수 있었고, 그의 "전도를 받아 목사 된 사람이 부지기수요, 장로, 집사 전도사가 된 사람이 이로 헤아릴 수 없었다". 더구나 그는 한국의 모모한 교단 교회들을 다 망라하여 찾아 다녔고, 대중집회 때에는 수천 명에서 수만 명에 이르는 인파가 몰 리기도 하여 하로 5, 6 차의 집회를 인도하는 일이 적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주로 작은 교회들 미약한 교회들을 향해서 더 많이 발걸음을 옮겨 그 부흥과 발전에 힘 썼다.
그의 부흥회는 새벽기도, 유년주일학교, 장년주일학교, 대예배, 오후 성별회, 밤 집회, 이렇게 꽉 짜여져 있었다.
이렇게 보낸 그의 장구한 부흥운동의 역정(歷程)을 돌아보면서 그는 이런 글을 남긴다.
나의 갈 길은 내가 알지 못하고 내 할 일을 내가 알지 못하고 내 할 말을 내 가 알지 못하고 내먹을 것조차 나는 알지 못한다.
오직 주님께 바친 몸, 그의 능력의 손에 붙잡혀 신앙생활 40년간에 부흥 사명 임한 지 23년 동안 … 지난 자취를 회고해 보면 신기하고 오묘하신 주님의 섭리 와 경륜을 다 측량할 수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의 힘이나 계획으로 된 것이 아이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역사적 소 명에 따랐을 뿐이라는 단언이었다. 부흥운동은 하나님의 사역이었다는 것인데, 이것 은 한국교회 부흥운동의 커다란 경종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부흥회의 결과로 신앙의 현상적인 고양(高揚)과 감격의 폭발이 다. 은혜가 넘치고 감사의 찬송이 실제 그 이전의 교회와 엄청난 대조를 이루는 것 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음은 실제로 신유의 은총이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가령 잉태 못하던 여인이 잉태한 사실은 여러 차례 보도되었다. 신유(神癒)의 기적도 많았다. 하지만 회 개하고 새 사람이 된 기적이 더 큰 이적이 아니겠는가. 아편(阿片)하던 사람의 회개 와 목사된 일, 한센병 환자들이 오히려 감사하게 된 일, 이런 목전의 열매들이 그 의 부흥운동의 경이와 영향력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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