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릉의 병마용. 지금도 수 천 명이 넘는 황제의 정예군들이 잠들어 있는 진시황을 호위하기 위
해 진을 갖추고 도열해 있다.]
중국 산시성의 성도 시안(西安). 중국의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도시다. 그런데 이 도시가 중국의 역대 통일 왕조 진, 한 그리고 수와 당의 수도였다고 한다면, 또 시안의 예전 이름 중 하나가 장안(長安)이라고 한다면 그리 낯선 도시만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시안이 중국 최대의 관광지 중 하나이며,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중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황제였던 진시황의 무덤, 즉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진시황릉(秦始皇陵)이 있기 때문이다.
진시황릉은 그 규모부터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는다. 무덤의 총면적은 56km2. 한강에 있는 여의도의 무려 6배가 넘는 면적이다. 중국의 역사서 ‘사기’에 따르면 총 70만명의 사람들이 동원돼 36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려 완성됐다고 한다.
진시황릉에서 발굴된 부장품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흙으로 빚어 만든 실물크기의 병마용(兵馬俑, 병사와 말의 인형)이다. 최근 병마용 외에 진시황릉에서 발굴된 몇가지 새로운 유물들이 공개 됐다. 고대 중국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진시황의 무덤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푸른 군복에 붉은 리본 매단 병사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http://clubimgfile.paran.com/clubcontents/bbs/2008/0724/1216875752_3.jpg)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http://clubimgfile.paran.com/clubcontents/bbs/2008/0724/1216875752_4.jpg)
[용갱 내부에서 발굴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보존액을 바르며 조심스럽게 땅에서 파내고 있다.]
진시황은 무덤 건설에 참여한 모든 인부들을 생매장했다고 한다. 자신의 무덤이 도굴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구조를 아는 사람은 살려두지 않았다는 얘기다. 발굴 작업을 시작한지 30년이 가까워지는 현재까지 진시황릉의 전체 구조는 미스터리다. 발굴 작업이 더딜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국 정부는 진시황릉의 모든 유물을 발굴하려면 앞으로 1백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측하고 있을 정도다. 현재 일반인에게는 진시황릉의 용갱(俑坑, 병마용이 묻혀 있는 구덩이) 몇개가 공개돼 있을 뿐이다. 용갱의 내부는 흙벽에 의해 길게 방이 나뉘어 있다. 흙벽은 상당히 견고하다. 먼저 흙을 쌓은 후 소나무를 놓은 다음 점토를 바르고 다시 석회를 발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굴이 시작됐을 때부터 많은 병마용들이 훼손된 채 뒹굴고 있었다. 이 이유에 대해서는 몇가지 설이 있다. 가장 유력한 것은 항우의 약탈설. 한을 세운 유방과 대적한 항우가 병마용이 들고 있던 실제 무기를 빼앗기 위해서 진시황릉을 파헤쳤다는 얘기다.
2천 1백 년 전의 소중한 유물이 더이상 손상되지 않기 위해서 발굴작업에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우선 용갱에 지붕을 씌워 보호하고 있으며, 현장 바로 옆에 진용박물관을 세워 발굴된 유물을 특별 관리하고 있다. 현재 진용박물관의 관장이며 발굴 책임자인 우용기는 유물의 발굴보다는 보존에 더 힘쓰고 있다고 말한다.
유물이 발굴된 후 산소에 의한 산화작용 때문에 색깔이 탈색되고 부스러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결국 독일의 연구팀과 합동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우선 땅속에서 병마용의 일부분이 발견되면, 조심스럽게 보존액을 바르며 땅에서 파내기 시작한다. 병마용이 땅에서 완전히 발굴되면 작업실로 옮겨진다. 여기에서 특별한 보존액을 바르고 나서야 하나의 병마용 발굴이 완성되는 것이다.
‘하늘의 아들’이 만드는 청동단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http://clubimgfile.paran.com/clubcontents/bbs/2008/0724/1216875752_6.jpg)
2000년 6월 고고학자 두안 진보의 발굴팀은 새로운 종류의 유물 몇가지를 발굴해 공개했다. 우선 한쪽 팔을 올린 독특한 동작과 의상의 인물상이다. 이 인물상이 춤을 추는 무용수인지, 묘기를 부리는 곡예사인지, 아니면 레슬링 선수인지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다.
또 무용수 인물상과 함께 거대한 청동 단지도 발굴됐다. 무게가 2백12kg이나 나가는 제물 단지다. 전국시대에서 여러 나라로 분열돼 있던 고대 중국에서 이러한 단지의 의미는 매우 중요했다. 전설에 따르면 가장 중요한 사람, 즉 ‘하늘의 아들’만이 하늘과 연결된 혈통의 상징으로 이와 같은 제물 단지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바로 한나라의 왕으로 군림하는 권위를 상징하는 단지인 것이다.
만약 이 단지를 라이벌에게 보낸다면, 이는 곧 그 나라의 힘을 가지겠다는 의미다. 즉 단지를 받으면 전쟁 아니면 굴복을 선택해야 했다. 진시황릉에서 발굴된 단지에 새겨져 있는 몇몇 표시들은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기 위해 싸웠던 여러 전쟁과 관련돼 있다. 아마도 진시황은 이 단지를 전쟁기간 중에 직접 가지고 다녔던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진시황의 무덤 자체는 발굴되지 않았다. 사실 지금까지 진행된 진시황릉의 발굴 작업은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다. 중국의 유명한 역사가인 사마천(기원전 145년경-85년경)의 저서 ‘사기’에 쓰여진 내용은 앞으로 발굴될 유물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노동자들은 매우 깊은 지하까지 파들어갔다. 그들은 청동으로 관을 깔고 그 위에 관을 안치했다. 그리고 진귀한 물건들로 묘지를 가득 채웠다. 침입자를 대비해 석궁이 자동 발사되도록 장치했다. 중국의 여러 강들을 수은으로 만들어 흐르게 하고 기계적으로 순환하도록 장치했다. 반짝이는 진주를 천장에 설치하고, 금∙은으로 새를 만들고 옥을 쪼아 소나무를 만들었다.”
*출처 : 동아사이언스
http://www.dongascience.com/home/photo_gallery_list.asp?category=&lpage=4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Re: 베트남 전쟁 (0) | 2008.08.04 |
---|---|
중국 서안의 피라미드(Pyramids) (0) | 2008.07.27 |
[스크랩] <김일성이 마오쩌둥에 보낸 군사지원 요청편지> (0) | 2008.07.27 |
[스크랩] <右로 폭주하는 日本…독도침탈 작전> (0) | 2008.07.26 |
[스크랩] <Corea의 C가 K가 되기까지> (0) | 2008.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