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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리스도의 죽음에 있어서 성부와 사단의 역할

참빛7 2007. 8. 3. 23:23

그리스도의 죽음에 있어서 성부와 사단의 역할


 성부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의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재판관의 오판이나 무고한 자에 대한 살인처럼 그것을 엄청난 실수로 여기시지 않으시는가?  원칙적으로 이것은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왜냐하면 지적 한계를 지닌 인간이 하나님의 생각을 전부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 중의 일부는 알 수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자기 생각을 우리에게 계시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대언자였던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참으로 엄청난 실수이며 재판관의 오판이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신 직후에 예루살렘에 모여든 무리들에게 베드로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 하였으며 너희 관원들도 그리 한 줄 아노라"(행 3:17)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같은 설교 중에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일찍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알리셨던 계획의 성취였다고 했다. 더 나아가서, 베드로는 인간의 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모든 사건을 주관하시는 분이라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사 자기의 그리스도의 해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행 3:18). 이처럼 그리스도의 죽음에 있어서도 전지하신 하나님은 자신이 미래 예언하신 일들을 이루셨던 것이다. 사건들이 아무리 혼란해 보여도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셨다.  이것은 하나님이 시나리오를 쓰시고, 그 후에 인간을 꼭두각시로 조종하신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약 1:13). 즉 하나님은 악한 목적으로 시험하시거나 못된 일을 하도록 강요함으로 자신의 계획을 성취시키시지는 않으신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어떤 일을 할 능력을 주시거나 그것을 하고 싶어하는 성향을 주셔서 자신의 계획을 성취시키신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본국으로 돌아가고자 했을 때 하나님은 애굽 왕 바로에게 선한 마음을 불어 넣으셨다(출 12:31-36).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국을 향해 애굽을 떠나자, 하나님은 바로에게 왕권을 사용하고 싶어하는 잔인한 마음을 허락하셨다(출 14:1-9). 이처럼 각 사람이 개인적 성향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일했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예수 당시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나 그의 장인 안나스같은 사람들이 산헤드린 공회를 지배하는 것을 허용하셨다. 그들은 사악한 무리들이었으며 자기들의 정치적, 종교적 특권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예수님을 죽이려 하는 그들의 결정은 그들의 사각성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그들의 양 어깨에는 무거운 책임이 지워져 있었으나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이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해 언급할 때, 그 일이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즉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다(행 2:23).

 

분명히 말해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실수나 오판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 성취였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죽음의 공포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하나님은 지금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시다(히 7:25).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실 충분한 근거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죄와 타협하지 않고 그것을 용서하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진리는 여러 구절에서 나타나지만 사도 바울의 주장보다 더 심오한 것은 없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배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 19-21). 

 

이 위대한 말씀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무죄성 및 그의 대속적 죽음을 밝히 말해주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 "안에" 그가 계시다는 그런 의미에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계시지 않았다. 이는 그리스도-아버지와 동등하시나 그와 구분되신 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신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케 하셨던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죄를 알지도 못하는 분"이라고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죄를 경험하지 못했다. 그의 마음에는 사악한 생각이 없었고, 그 입에는 거짓된 말이 없었으며, 언제 한번 그릇된 행동을 한 적도 없었다. 그는 우리처럼 자신의 죄로 인하여 죽게 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

 

 이와 완전히 다른 의미이기는 하지만 그는 또한 하나님을 위하여 죽으셨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죄인으로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자비를 베푸실 충만한 근거를 만들어 드렸다. 우리가 구원받을 만한 가치가 있거나 또는 우리 죄를 간과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요구를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만족시켜 드렸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셨던 것이다. 입법자이신 하나님은 죄에 대한 형벌로서 죽음을 요구하시는데 그리스도는 그 형 벌을 완전히 치르셨다.

 

 우리가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할 때 우리가 고백하는 내용 가운데는 위의 설명과 같은 사실이 내포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공의의 시행자인 동시에 사랑의 실천자가 되셨던 것이다. 또한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셨다는 진리를 강조한다. 왜 아버지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셨는가? 요한은 그것을 이렇게 설명한다. "저로 말미 암아 우리를 살피려 하심"(요일 4:9)과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가 되기 위함"(요일 4:10)과 또한 "세상의 구주가 되기 위해"(요일 4:14)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내셨다고 했다. 요한이 말했던 것처럼, 그 아들이 죽지 않고는 화목이 이루어질 수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아들을 죽게 하기 위해 보내셨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받아 죽으실 때, 하나님은 단순한 방관자가 아니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계획했으며, 그 계획의 목표는 우리의 구원이었다. 요한이 말한 대로 아버지는 세상의 구주가 되시도록 아들을 보내셨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이라는 드라마에서 사단은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해 사단이 어떤 책임을 지니고 있는가? 그는 그 죽음을 기뻐했는가? 여러 성경 구절을 통하여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이 주어실 것이다. 첫째,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 3:8).


 그리스도가 마귀의 일을 멸하는데 성공하셨는가? 성공하셨다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마귀를 멸하셨는가? 바울은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골 2:14, 15).  우리를 거스리는 권세는 사단과 그의 추종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능력은 십자가에서 파괴되었다. 히브리서 기자는 "사망으로 말미 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려고"(히 2:14)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셨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사단의 패배이다. 그러나 사단은 지금도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패배당하였으며, 그의 능력은 파괴되고 있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를 묶어 불못으로 던져 넣으실 것이다.

 

우리 주님은 자신의 고난과 죽음이 사단의 패배를 분명하게 나타내 준다는 것을 아셨으며, 사단도 또한 그것을 알았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그 사실은 사단이 예수님의 생애 중에 그에게 극심한 적대 행위를 한 것과 예수님의 죽으실 기간이 다가옴에 따라 증오로 광분 하는 모습이 더 분명해지는 사실을 잘 설명해준다. 사단은 십자가를 지러가는 예수님의 길을 바꿀 수 없게 됨을 알자, 그 길을 대단히 고통스럽게 하고, 죽음의 고난을 더욱 쓰라리게 하려 했다. 의심할 나위도 없이 사단이 배신자 가룟 유다를 충동질했으며 유대인과 이방인의 분노심을 선동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단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그의 능력은 십자가에서 파괴되었다. 그래서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다음과 같이 사단과 죄에 대한 승리가를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잔인한 흑암의 왕자,

우린 그를 두려워 않네.

그의 진노도 능히 견디네.

자, 그에게는 진노만 있나니,

이 한 마디 그에게 있을 뿐이네.

"전능하신 방패는 우리 하나님"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일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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