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예수로 칭칭 동여매고 사는 사람 - 서순종 장로 이야기

참빛7 2007. 7. 8. 00:43
예수로 칭칭 동여매고 사는 사람
십년 전 새로 부임했었던 강화 교동섬의 지석교회 서순종 장로 이야기
입력 : 2007년 07월 06일 (금) 19:58:27 [조회수 : 85] 노둣돌 pakchol@empal.com
   
 
  ▲ 서순종 장로.  
 
1996년 봄, 나는 거처를 강화 교동섬이라는 곳으로 옮기게 되었다. 내가 섬마을에 살게 되리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교동은 강화 창후리라는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한 20여 분쯤 가면 서해 최북단, 북한 접경지역의 아담한 섬이었다. 그때 만해도 북한 연백 쪽에서 대형 스피커를 통해 대남 선전방송을 했는데 소리가 얼마나 큰지 귀가 웅웅거릴 정도였다. 새로 부임한 지석교회는 야트막한 둔덕에 세워졌는데 온 동리 사람들이 등짐을 져서 지었다고 한다. 자연과 어울려진 매우 아름다운 교회였다. 교인은 60-70명쯤이 모였다.


이삿짐을 풀고 책 정리를 하고, 그 다음날 생활용품을 사러 교동에서 가장 중심에 위치한 대룡리엘 가게 되었다. 못을 사러 철물점에 들어갔는데 철물점 주인이 나를 보고 대뜸 한다는 말이 “혹시 지석교회에 새로 부임해 오신 목사님 아니시냐?”고 묻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서 “그걸 어떻게 아셨냐?”고 물었더니 교동은 손바닥만한 데여서 사람이 들고 나가는 것을 다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목사님, 참 좋겠시다. 좋은 교회에 오셔서…. 지석교회에 서순종 장로라는 분이 계신데 이 분은 예수 정신으로 칭칭 동여매고 사는 사람이시다."


얼마나 예수 정신으로 충만하면 '예수 정신으로 칭칭 동여매고 사는 사람'이라고 말했을까? 그리고 그 표현이 얼마나 절절한가? 정말 그랬다. 그 후 8년 동안 교동에서 목회하고 떠날 때까지 나는 그 분을 형님처럼 존경하고 의지했다.


어느 날, 이웃교회에 후배 목사가 바람 쐬러 가자고 찾아왔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나보고 다짜고짜 한턱 쏘라는 것이 아닌가. 그 이유를 물은즉 며칠 전 교회에서 연합속회예배를 인도하는데 우리가 사는 교동지역에서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모든 사람이 존경하는 사람을 한 사람 추천하라고 했더니 서순종 장로가 만장일치로 뽑혔다는 것이다. 


그 분은 정말 예수를 제대로 믿는 분이다. 교인들뿐만 아니라 교회 다니지 않는 동네 사람들에게도 존경을 받는다. "서순종 장로 같이 예수를 믿을 거 같으면 한번 믿어볼 만하지!"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데 괜히 듣기 좋으라고 하는 빈말이 아니다. 서 장로는 동네에서 온갖 굳은 일에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나선다. 독거노인들의 장을 봐다 주기도 하고,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다. 그래서 괜한 오해를 받을 때도 있다. 그래도 개의치 않는다.


몇 해 전 만우절 날, 거짓말로 남을 적당하게 골탕 먹여도 크게 욕먹지 않는 날에 이런 일이 있었다. 동네 어느 젊은이가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거짓말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 제목은 "서순종 장로가 다음날 인천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였다. 사람들은 다 속아 넘어갔다.


"아이고, 이제 어쩌면 좋겠시까. 서 장로님이 떠나면 교회가 어떻게 되겠시까."

"왜 갑자기 서 장로님이 이사를 간단 말이오. 그러면 안 되지요."


집집마다 눈물 바다가 되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 장로를 붙잡아야 한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이사 갈 수 없다고, 그 분이 이사를 가면 누굴 믿고 사냐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만우절 날 잠깐 동안의 해프닝이었지만 서순종 장로가 어떤 분인지 그 분의 신앙이나 인품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 2003년 봄, 인천 연안부두에서.  
 

그날 저녁, 교회 교육관에서 젊은 집사가 녹화해 온 비디오를 틀었다. 어떤 할머니는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며 말을 잇지 못하고, 어떤 할아버지는 탄식을 하며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당장이라도 서 장로에게 물어보아야겠다는 장면이 아무 여과 없이 TV화면에 그대로 나왔다. 동네 사람들이 만우절 날 거짓말 인터뷰에 깜박 속아 울고불고 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박수를 치며 깔깔 웃었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의 인터뷰를 다 보고 난 사람들은 웃지 않았다. '정말 서 장로가 우리교회를, 우리 동네를 떠나가면 어떻게 할까?'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거짓으로 꾸몄던 얘기가 진짜로 둔갑하면 어떡하나 하는 우려가 방금 전까지 재미있다고 박장대소를 하던 교인들 마음속에 물결처럼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이름 그대로 예수님 말씀에 순종 잘하기로 소문난 서순종 장로, 지금도 마음이 헛헛할 때는 참 보고 싶고 그립다.

박철 목사(부산 좋은나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