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인 공동체의 비전 : 21세기형 교회의 모델
임 태 우 교수 (신약신학)
모든 시대, 모든 교회의 영원한 모델은 초대교회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초대교회는 어떤 이상을 펼쳐나간 교회였을까? 신약 성경, 특히 사도행전 2장을 토대로 우리 교회가 나아갈 모습을 그려보기로 하겠다.
가. 삶을 변화시키는 ‘말씀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초대 교회에서는 성도들이 사도들의 말씀을 근거로 변화된 삶을 살았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성도들이라면 반드시 삶을 통하여 그들의 신앙 고백을 확증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말씀공동체’인 교회를 통하여 용광로와 같이 새로운 변화의 삶을 체험하곤 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사도행전과 신약 성경의 서신서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교회가 교회일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앙의 객관적 요소가 되고, 말씀 안에 거하는 자라야 하나님께 속한 자이기 때문이며(요 8:31, 47 등), 다른 복음은 없으며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기 때문이다(갈 1:7-9).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무오하고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어야 하며, 성경 외에 다른 것을 첨부하여 사도신경에서 이탈된 신앙체계를 경계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평가하고 비판하여 수용하고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는 변화가 일어난다.
오늘날도 역시 교회의 참 모습은 세속적인 정치나 행정, 조직의 개편이나 응용이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교회의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교회가 정치 단체나 세속적인 집단과 같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참된 기준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표상이 되어야 하나님의 교회는 바로 서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의 전문가가 되어야 하며, 강단 위의 말씀과 더불어 강단 아래에서의 삶을 통한 복음의 증거가 요구되는 시기에 살고 있는 것이다 아니 이것이 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이요, 교회의 모든 성도들의 모습인 것이다.
나. 친밀한 교제가 있는 ‘치유공동체’ 되어야 한다.
초대 교회에서는 성도들이 목숨을 나눈 사랑의 교제를 하였다. 친밀한 교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인격과 삶이 전제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는 서로의 허물과 상처를 치유시켜 주는 공동체가 될 수 있었다. 고해(苦海)를 헤쳐 나아가면서 수많은 상처와 바람에 쓸리고 찢긴 상처와 죄악을 털어놓고 새롭게 싸맴을 얻을 수 있는 곳이 교회가 되어야 한다. 더욱이 인간 소외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현대 교회에서는 무엇보다도 치유 사역이 필수적이 되어야 한다.
이제는 교회가 양적인 성장과 더불어 질적인 면에서 성도들의 성숙한 신앙과 치유 받는 삶이 되도록 배려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교회의 역할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상담실과 실제적인 치유 사역을 위한 공동의 쉼터나 토론장, 문화와 교육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인생의 어느 시기, 어떤 영역에서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출동하여 치유하고 복구시켜 줄 수 있는 영적인 119 구조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 구령의 열정에 사로잡힌 ‘선교공동체’ 되어야 한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구령의 열정에 사로잡힌 성도들이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구주임을 깨달은 그들은 목숨을 바쳐서 복음을 증거 하였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선교에 있다. 왜냐하면 교회는 본질적으로 시작되면서부터 선교를 위한 공동체로 부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기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이웃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적극적으로 증거 해야 한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교회가 아무리 훌륭한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것 같아도 적극적인 선교공동체가 되지 못한다면 이는 아직도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참된 교회라면 반드시 영혼 구원을 위한 선교에 매진해야 한다.
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하고, 후원하고, 교육시키고, 훈련시켜야 하고, 선교를 위한 물질과 마음과 기도를 드려야 할 것이다. 다른 것은 부족해도 선교의 열정이 식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선교는 교회의 심장이요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라. 가난한 이들과 재산을 나누는 ‘재정공동체’
초대 교회는 가난한 이들과 재산을 나누었다. 물론 교회가 강제적으로나 작정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사도들의 발 앞에 그들의 재산을 갖다 놓아서 필요에 따른 구제와 공동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도 브루더호프(Bruderhof) 공동체 같은 곳에서는 공동생활의 기독교적 이상을 실현하고 있다. 모든 현대 교회에서도 역시 강조되어야 할 것이 사회 목회(Social Ministry)이다. 교회가 더 이상 말로만 사랑을 외치고 재정적인 부와 풍요함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 참된 교회의 모습은 공동체 안에서부터 재산을 나누는 일에 적극적이어야 하며, 교회의 담을 넘어서 이웃과 사회에 적극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가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에게 소유 재산을 나누어주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물론 일부 교회나 선교 단체에서 사회 복지 차원의 봉사를 실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느 특정한 단체나 헌신한 분들만이 이 일을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교회, 모든 성도가 구제하는 일과 재정을 나누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찾아오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삶이되기 때문이다.
마. 차원 높은 사랑을 주고받는 ‘사랑공동체’ 되어야 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근거를 두고서 형성된 특수한 공동체이다. 성도들은 지위나 권세나 부나 명예나 가문 등이 고려된 조직이나 사회단체가 아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를 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구속의 은혜가 서려 있는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오직 믿음 외에는 아무런 제약이나 장애를 두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교회의 모든 활동은 사랑을 주고받는 사역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로부터 다함이 없는 사랑을 공급받으며 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의 통로로서 교회 안에서부터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서로의 지체됨을 새롭게 인식하고서 함께 울고 함께 웃되 얄팍한 인간의 감정이나 이권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의 실천장으로서 교회의 모습을 지녀야 한다. 오직 우리가 서로를 사랑할 때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에 증거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특히 요한 서신의 근본적인 주제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차별적인 사랑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지극히 잘못된 것이다. 우리 모두는 마땅히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가 되도록 희생과 인내와 관용과 양보의 정신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차원 높은 사랑을 주고받는 공동체가 되지 못한다면 이웃 사랑은 꿈도 꿀 수 없는 이기적이고 하나님 나라에서 이탈된 기형적인 공동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최대 목표는 교회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차원 높은 사랑을 주고받는 사랑공동체가 되도록 헌신하는 것이다.
바. 새로운 희망이 솟아 넘치는 ‘소망공동체’ 되어야 한다.
현대는 희망을 상실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시대에 교회는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어야 한다. 최후의 보루로서 교회는 희망의 샘이 솟아 넘치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존재 이유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소망을 갖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영생의 소망과 내일의 희망을 갖고 살아가도록 격려해 주고 바른 길로 인도해 주어야 한다.
마치 천로역정의 순례자와 같은 인생들에게 참된 빛을 비추어 주는 일을 교회가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시대나 어느 민족, 어느 문화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고백하고 영접한 이들에게는 넘치는 희망이 솟아오른다. 그리고 참된 소망이 있는 성도는 오늘을 의미 있게 살아가며, 인생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모두 확고한 믿음에 터전을 두고서 희망이 넘치는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다. 그들이 처한 환경과 여건이 결코 나은 환경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환경과 세상의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신들의 정체감을 지켜 주고 소망을 보여주는 교회 공동체가 있었기에 성도로서 부끄럽지 않고 당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이것이 신약 교회의 참된 모습이다. 그러므로 정체성을 상실하고 소망이 없는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참 소망을 보여주는 것이 교회의 책임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사. 행동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믿음공동체’ 되어야 한다.
교회는 살아 있는 유기체이다. 정체된 조직이나 단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약동하고 살아 숨쉬며, 자라나고, 재생산과 확장이 이루어지는 생명체가 교회이다. 그러므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진정한 기독교의 믿음은 아니며, 교회의 모습이랄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반드시 행동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초대 교회의 모습이요, 성경적인 교회의 참된 표지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믿노라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구원 행동이 우리를 통해서 증거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세상에 드러날 수 없다. 따라서 교회의 존립 여부는 행동하시는 하나님의 참 모습이 깃들이어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판가름 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현대 교회는 기독교의 권위와 교회의 정체성이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기에 더욱 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구원을 증거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특히 소외된 계층이나 장애인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 교회가 내미는 손에서, 그들을 품에 안는 따스한 가슴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21세기 교회의 영원한 모델은 초대 교회이다. 그리고 모든 시대 모든 교회의 원형은 초대 교회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목회 하는 현대 교회, 특히 21세기 교회의 참된 모습은 가장 기본이 되는 초대 교회의 공동체 원리와 유기체적 삶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노력을 통하여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공동체요, 지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맛볼 수 있는 실제적인 천국의 모형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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