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록산느의 들장미 김연아, 레미제라블에서 꽃피우다
록산느의 들장미 김연아, 레미제라블에서 꽃피우다
-레미제라블, 김연아가 추구하는 피겨세계 선보여
-07-08시즌 '박쥐' '미스사이공'…밤에 피어난 장미
-김연아 피겨세계는 지금부터…소치 마지막 무대 만발할 것
이제 시작이었지도……. 2013월드 레미제라블을 보고나서 느낀점입니다. 그녀의 피겨는 이제 나래를 펼쳤는데, 소치 올림픽은 다가오고 그녀가 현역선수로서 마지막 무대를 아쉬운 마음으로 기다려야하는 우리입니다.
’07월드 쇼트 프로그램이 끝난 후 김연아 선수의 모습. 불그레한 볼만큼 수줍게만 보인 소녀였습니다. 하지만 연기 중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16세 소녀의 몸짓, 손짓, 얼굴표정 하나하나에 빠져들게 만들어버립니다. 이 소녀가 피겨의 기준을 제시할 것이라던 한 해외 해설자의 예지능력. 과연 맞았을까요. 틀렸다고 봅니다. 피겨의 기준이 아니라 감히 넘지 못할 수준의 피겨를 선보이고 말았습니다.
기준이 아니라 경배의 수준을 제시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무엇이 이 소녀를 저만치 저 멀리, 감히 넘볼 수 없는 피겨를 제시하게 했을까요.
“올림픽이라는 두 번째 산보다 첫 번째 산이 더 넘기 힘들었다.”
김연아 선수가 말했던 것을 다들 기억하실겁니다.
’08월드를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1위를 한 선수는 빙판위에 나딩굴어 20초 동안 물속에 빠진 마냥 허우적거리는 듯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그리고 2등을 한 선수는 프리연기 점프에서 랜딩할때마다 비틀비틀했습니다.
그렇지만 결과는 어떻든가요.
’08월드는 결국 김연아 선수는 ’07월드에 이어 3위라는 성적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습니다. 좀처럼 점수에 아쉬움을 표하지 않았던 김연아 선수의 표정. ‘미스사이공’ 점수 발표가 난 후 마치 아기사슴처럼 슬픈 눈망울을 보았다면 저만의 착시였을까요.
다음시즌 김연아 08-09시즌 그랑프리 1차 SA(스케이트 아메리카)때를 기억하실겁니다.
김연아 선수가 독주체제를 구축하게 된 시발점이 바로 그 때부터였을 겁니다. 쇼트프로그램 ‘죽음의 무도’와 롱프로그램 ‘세헤라자데’. 그 전 시즌 ‘박쥐’ 와 ‘세헤라자데’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빙판위에 선 김연아 선수는 검정 드레스를 입고 있었습니다. 눈매는 스모키 메이크업으로 한층 강렬했었습니다. 양 팔을 벌린 채 서있는 김연아 선수, 음악이 시작되자 김연아 선수는 왼쪽, 중간, 오른쪽을 강렬하게 노려봅니다. 마치 한명, 한명 노려보며 경고하는 눈빛처럼 보였습니다.
그녀의 연기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동안 서정적이고 애절한 연기를 보였던 김연아 선수는 마치 화신이 된 듯이 강렬한 연기로 경기장 안의 모든 것을 부셔버립니다. 그리고 엔딩에서는 뒤를 돌아보며 짓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막을 내렸습니다. 그동안 부당한 판정에 대해 비웃는 듯한 통렬한 자신감의 표현으로 보였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김연아 선수의 독주체제가 구축되어버립니다.
그리고 ’09월드에서는 압도적인 점수 차이로 1위를 기록합니다.
마침내 첫 번재 산이었던 월드에서 정상에 오른 것이죠.
그 다음 올림픽 시즌을 맞아 김연아 선수는 쇼트프로그램은 ‘007메들리’, 롱프로그램은 ‘거쉰피협바장조’를 선보입니다. 쇼트·롱프로그램 모두 클린으로 장식을 합니다. 점수따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거쉰이 끝난 후 모두가 그녀의 여왕등극을 확신했고 축하했습니다. 쇼트프로그램 2위를 기록한 선수가 바로 뒷순번이었지만, 이미 여왕은 가려진 상태였었죠. 동계올림픽의 꽃이라는 여싱에서 김연아 선수는 역대 올림픽사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여왕즉위식을 거행하게 됩니다.
여왕의 시련은 끝난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2011월드에서도 아쉬운 판정으로 은메달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김연아 선수의 눈물. 어떻게 잊겠습니까. 팬들과 조국을 위해 아리랑을 선곡했는데……. 무슨 눈물이었을까요. 팬들에 대한 미안함. 판정에 대한 부당함. 아마 둘 다일 것입니다.
그리고 김연아 선수는 선택의 갈림길에 놓입니다.
보통 여자싱글 전성기는 19세부터 22세라고들 말합니다. 그리고 소치올림픽은 그녀나이 24세가 될 때입니다. 대부분 그녀의 은퇴를 예상했습니다. 이룰 것을 다 이룬 김연아 선수가 더 이상 부츠를 바로 신고 나설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김연아 선수는 현역연장을 선택했습니다. 바로 후배들에게 올림픽 경험이라는 선물을 주기 위해서 다시 부츠의 끈을 조였습니다. 하루 8시간의 강훈이 이어졌고, 2년만의 컴피 무대에 선 김연아 선수의 몸은 밴쿠버 올림픽때보다 훨씬 가녀린 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선보인 프로그램 ‘뱀파이어의 키스’와 ‘레미제라블’. 이 두 작품은 2013월드에서 진가를 발휘합니다. 쇼트 프로그램은 김연아 선수 특유의 강렬한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롱프로그램 ‘레미제라블’은 세계를 경악시켜버립니다.
개인적으로 김연아 선수의 카리스마와 다이나믹한 김연아 선수의 쇼트프로그램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세계는 김연아 선수의 ‘레미제라블’에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기술의 완벽함은 기본이고, 높은 예술성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어버립니다. 레미제라블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로 여왕에 대한 경배였습니다. 정말 화려하지만, 한편으로는 애잔한 돌아온 여왕의 귀환이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하고는 합니다. 거쉰에 버금가는, 어쩌면 뛰어넘는 프로그램이 나올지 차마 몰랐다고요. 과연 그럴까요. 김연아 선수가 추구한 피겨가 어떤 것이었을까요. 아름다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란 게 심판은 물론 대중까지 사로잡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기억할 것입니다. ’08시즌 선보였던 연아 선수의 프로그램인 ‘박쥐’와 ‘미스사이공’을요. 그게 김연아 선수가 추구하고 싶은 피겨가 아니었을까요. 예술성을 극대화한 작품들이었지만, 대중적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심판들이 장난질할 빌미를 제공해 주었다고나 할까요.
만약에 ’08월드에서 심판들이 정당한 점수를 주고, 김연아 선수가 월드에서 우승을 차지했다면, 우리는 레미제라블 같은 작품을 이미, 벌서 보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황홀하며서도 마음을 뒤흔드는 작품을 들고 나왔을 것입니다.
소치올림픽이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녀가 추구하는 피겨세계의 일부만을 보았을 뿐입니다. 정말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 없습니다. 후배들에게 올림픽 경험을 선사해주고 싶다고 했던 김연아 선수. 그리고 마음을 비우고 들고 나온 작품이 레미제라블일지도 모릅니다. 일찍이 07-08시즌 선보였던 그녀의 피겨세계가 이제야 빛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 앞서가서 일까요. 이제야 사람들이 김연아 선수의 피겨를 이해하는 수준이 되어서였을까요. 피겨계가 그녀의 진가를 진작에 알아주었더라면, 김연아 선수가 맘껏 자신이 추구하고 싶은 피겨를 할 수만 있었다면, 하는 진한 아쉬움. 그녀의 마지막 컴피 작품이 그래서 더욱 기다리지면서 한편으로는 애잔함이 밀려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